한·미 미사일 지침상 사거리 800㎞ 제한
사거리 연장은 中·日 반발 우려…영공 문제 얽혀
“한국과 미국이 이번에 미사일 탄두 중량 제한 해제에 합의한 건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그만큼 양국이 북한의 도발 위협을 절박하게 인식하고, 군사 공조를 긴밀히 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공감한단 증거니까요. 다만 미사일 사거리 제한 문제는 이와는 완전히 다른 테마입니다. 미국은 결코 사거리 연장만큼은 합의하지 않을 겁니다.”
권용수 전 국방대 교수(57·사진)은 5일 한국경제신문과 통화하며 이같이 말했다. 해군사관학교 출신인 권 전 교수는 지난 7월 정년퇴임했을 때까지 국방대 무기체계학과에 몸 담았으며, 국내 최고의 미사일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한국은 2012년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으로 탄도미사일의 최대 사거리를 800㎞로 늘렸지만, 800㎞ 미사일의 탄두 중량은 500㎏으로 제한됐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밤 통화에서 한·미 미사일 지침의 탄두 중량 제한을 해제하기로 전격 합의하면서, 1979년 양국이 미사일 지침에 처음 합의한 지 38년만에 우리 군의 탄두 중량 제한이 사라지게 됐다.
권 전 교수는 “탄도미사일의 탄두 중량 제한을 없앴다는 건 그만큼 우리 군의 대북 보복 응징 능력이 훨씬 상승한단 뜻”이라며 “북한의 핵실험 장소, 수뇌부 은신처 등 주요 시설이 대부분 지하에 설치돼 있기 때문에 사실상 한국의 독자적 능력으로도 탄도미사일로 북한 전역의 지하 시설을 파괴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탄두 중량이 1t 정도만 돼도 공격력이 비약적으로 커진다”며 “한·미 양국 정상이 합의한 데다, 북한이 벌써 여섯 번째 핵실험을 강행한 만큼 군에서도 관련 실무 협의가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우리 군은 사거리 300㎞의 ‘현무-2A’와 500㎞의 ‘현무-2B’, 800㎞의 ‘현무-2C’ 등을 보유하고 있다. 현무-2A와 현무-2B는 이미 실전배치됐고, 현무-2C는 지난달 24일 마지막 비행시험을 마친 후 실전배치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권 전 교수는 일각에서 나오는 미사일 사거리 연장 합의 가능성에 대해선 “탄두 중량 제한 해제와 사거리 연장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이건 영공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에 쉽게 논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미국이 사거리 연장 합의를 거부하는 이유는 한국과 중국, 일본 등 각국이 영공 문제로 분열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라며 “한·중·일 3국은 서로 지리적으로 맞붙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미사일 사거리 연장을 추진한다면 당장 일본과 중국이 반발할 것이고, 이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다 자칫 더 큰 마찰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권 전 교수는 “우린 안보 문제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북한의 도발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도 높고,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만큼 한국이 주변국들과 군사 공조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뭔가 하겠다고 발표하면 반드시 한다”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보여 준 성향상 올 연말까지 수차례 더 핵실험 또는 미사일 시험발사 도발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