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빛의 패션야사] 170년된 英 조정경기 유니폼, 올해 한국에서 유행하는 이유

입력 2017-09-03 08:00
수정 2017-09-04 08:38
엑소, 방탄소년단, 비투비 등 누나 팬의 사랑을 받고 있는 남성 아이돌에게도 '남성미'를 과시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남성 아이돌이 착용하는 패션 아이템은 헨리넥 셔츠입니다. 20대 초중반의 비투비도 여느 직장인처럼 보이게 하는 아이템이죠.

헨리넥 셔츠는 카라가 없는 셔츠입니다. 목에 3~4개의 단추 여밈이 남아있는 형태가 특징입니다. 티셔츠나 니트를 겹쳐 입는 등 다양한 스타일링을 선보일 수 있는 아이템이죠.

헨리넥 셔츠는 사실 정장보단 운동복에 더 가깝습니다. 원래 경기 복장에서 유래했기 때문이죠.

헨리넥 셔츠의 탄생 시기는 1839년 영국의 어느 조정 경기장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헨리 넥 셔츠의 '헨리'는 영국 템스 강가에 있는 마을 이름 '헨리온템스'에서 유래했습니다.

헨리온템스는 170년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의 대표 조정 경기 '헨리 로열 레가타(Henley Royal Regatta)'가 개최되는 곳입니다. 이 경기에선 해마다 전통적인 유니폼을 입은 각 팀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죠.

헨리넥 셔츠가 탄생하게 된 배경은 조정 경기가 영국의 중·상류층이 즐기는 경기였다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셔츠로 격식은 차리면서도 활동하기에 편하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죠.

영국의 노동자 층은 헨리넥 셔츠를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을 것으로 패션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1878년 영국 아마추어 조정협회 규정에 따르면 수공업자, 정비공, 노동자들은 '아마추어 선수'로 인정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헨리넥 셔츠를 입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국 이외의 나라에선 달랐습니다. 오히려 헨리넥 셔츠가 대중화 바람을 탔습니다. 1900년대 미국에선 오히려 노동자의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잡았죠. 골지 소재의 헨리넥 티셔츠 제품도 출시된 덕분입니다.

품이 넉넉한 헨리넥 셔츠는 작업복 안에 입는 이너 아이템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골지 형태의 헨리넥 티셔츠라 왠지 어릴 적 입었던 내복이 떠오르네요.

당시 멜빵 위에 입는 방식이 유행했습니다. 영화 레옹(1994)에서도 이런 스타일이 엿보입니다. 영화에서 레옹을 연기한 장 르노는 흰색 헨리넥 티셔츠에 멜빵으로 강인한 남성스타일을 선보였습니다.

헨리넥 셔츠는 1960년대 미국에선 영향력을 더 확대했습니다. 당시 미국의 경제 성장과 함께 국민들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여가생활이 확산됐습니다. 이에 따라 실용성 높은 아이템도 자연스럽게 각광 받았습니다.

바닷가에서 보드를 타는 서퍼들은 헨리넥 셔츠를 '서퍼 셔츠'로 활용했습니다. 일명 '파도타기용 셔츠'로 보드를 탈 땐 벗고, 타고난 후엔 입는 형태로 사용한 것이죠. 헨리넥 셔츠가 서퍼 셔츠로도 불리는 이유입니다.

작업실에서 일상까지 파고들면서 헨리넥 셔츠는 국내에서도 인기 있는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올해 한국에서도 헨리넥 셔츠는 인기를 끌었습니다. 쿨비즈(시원하고 간편한 비즈니스 복장) 열풍이 헨리넥 셔츠의 인기에 한몫을 했습니다. 올 여름 헨리넥 셔츠가 쿨비즈 스타일의 대표 아이템으로 우뚝 입지를 강화했기 때문이죠.

헨리넥은 카라가 없기 때문에 여름엔 리넨(마)처럼 얇은 소재로도 활용 가능합니다. 올해 여름엔 단색의 리넨 제품뿐만 아니라 절개 배색 디자인의 개성있는 스타일의 제품도 출시돼 인기를 끌었습니다.

가을 시즌에도 데님이나 면 형태의 헨리 넥셔츠가 남심(男心)을 공략하기 위해 잇따라 출시되고 있습니다. 소재에 따라 봄부터 겨울까지 활용할 수 있는 가성비 높은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한 듯 보입니다.

헨리넥 셔츠는 단추를 1~2개 풀어주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목선을 넉넉히 드러내주는 것이 여유 있는 남성이라는 이미지를 한 번에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죠. 가을 찬바람이 불기 전 헨리넥 셔츠로 깔끔한 목선을 자랑해보는 건 어떨까요.

고은빛 한경닷컴 기자 silverligh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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