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등장인물이 2400여 명에 이르는 《인간희극》 시리즈의 프랑스 작가 오노레 드 발자크(1799~1850). 그는 수없이 원고를 고치고 다듬은 ‘퇴고의 달인’이었다. 한 페이지를 쓰기 위해 60장 이상을 새로 쓰고 또 고쳤다.
이미 끝낸 소설을 열여섯 번까지 수정하기도 했다. 단조로운 묘사는 풍부하게, 늘어지는 이야기는 속도감 있게, 대화체는 더 생생하게 손질했다. 그 덕분에 그의 소설은 어느 작품보다 사실적이고 재미있으며 생동감이 넘쳤다. 나폴레옹 시대를 거쳐 왕정 복고와 7월혁명(1830) 등 19세기 격동의 프랑스 사회도 깊이 있게 그릴 수 있었다.
"어제 쓴 글은 이미 낡은 것"
원고를 인쇄소에서 조판한 뒤에도 그는 끊임없이 고쳤다. 출판사들은 그를 위해 특별 교정지를 준비해야 했다. 한가운데에 활자를 찍고 아래위와 양옆에 넓은 여백을 마련해 가필할 수 있도록 했다. 그는 여기에 고칠 문구와 더할 문장들을 빽빽하게 써넣었다. 여백이 모자라면 뒷면에 이어 쓰고, 그것도 부족하면 다른 종이에 따로 써서 풀로 붙였다.
인쇄소 직원들은 비명을 질렀다. 특별히 훈련받은 식자공마저 손을 내저었다. 우여곡절 끝에 나온 새 교정쇄를 받고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안 되겠어. 어제 쓴 것, 그제 쓴 것,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 의미는 뚜렷하지 않고 문장은 혼란스럽고 문체는 잘못됐고 배치도 너무 어려워! 모든 걸 바꿔야 해. 더 뚜렷하게, 더 분명하게!”
교정지만 일곱 번 고친 일도 있었다. 추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출판사가 어려워하면 자기 호주머니를 털었다. 이런 식으로 원고료의 절반이나 전부를 다 날린 게 10여 차례나 된다. 한 번은 어떤 신문이 끝없이 계속되는 그의 교정에 지쳐 마지막 수정본을 기다리지 않고 연재를 게재하자 ‘영원한 절교’를 선언하기도 했다. 인쇄기가 돌아가는 중에도 그의 문장 다듬기는 계속됐다. 이 때문에 출판사들은 초판본을 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정본을 잇달아 내야 했다.
평소에도 그는 하루 16시간씩 원고지와 씨름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오후 6시에 잤다가 밤 12시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그때부터 낮 12시까지 쉬지 않고 일했다. 로댕은 라스파이유 거리의 발자크 동상을 잠옷 차림으로 조각했다. 하루 종일 틀어박혀 원고만 썼던 그를 기억하자는 의미에서였다.
헤밍웨이·톨스토이도 퇴고 달인
발자크가 잠을 쫓기 위해 마신 커피만 하루 50잔에 가까웠다고 한다. 국내 커피 광고에도 등장했지만, 그는 원고지를 잉크가 아니라 커피로 채운 사람이었다. 그렇게 전력투구한 결과 90편의 장편과 중편, 30편의 단편, 5편의 희곡 등 엄청난 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
파리 센강변 언덕배기 그의 집 거실에 낡은 책상이 놓여 있다. ‘연금술사가 자신의 금을 던져 넣듯이 내가 나의 삶을 용광로 속에 던져 넣은’ 그 나무 책상이다. ‘비참한 생활을 나와 함께했고 내 눈물을 닦아줬고 내 모든 생각을 들어줬으며 내 팔이 항상 그 위에 있었고 내가 글을 쓸 때 함께 명상했다’던 그 책상 위에서 그는 밤새워 원고를 쓰고 또 고쳤다. 그를 ‘사실주의 문학의 아버지’라 부르고 그의 작품을 ‘근대소설의 교과서’라고 하는 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어디 발자크뿐인가. 헤밍웨이도 《무기여 잘 있거라》를 39번 고쳐 썼다.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를 하도 많이 고쳐 초고 형태를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위대한 작품들은 이처럼 끝없는 자기혁신과 ‘창조적 파괴’를 거쳐 탄생했다. ‘어제 쓴 건 모두 낡았다’는 발자크의 지적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 글 또한 윤전기가 돌고 나면 이미 낡았겠지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