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의 '갑질'
혹은
육군대장의 '갑질'
'갑질'도 내로남불?
예비군은 유사시(전쟁)를 대비하는 예비병력이다. 군복무 후 자동 편성된다. 동원·향방예비군 각각 4년씩 총 8년을 훈련받는다.
예비군 5년차인 뉴스래빗 기자 A는 지난 22일은 향방예비군 후반기 교육에 참석했다. 군복을 입고 거주지 동사무소로 향했다. 예비역 80여명이 동사무소 교육장에 모여들었다. 곧 동대장이 훈련 일정을 설명했다. 동대장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한 예비군은 10명 남짓.
대부분 대답조차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동대장이 불을 끄고 작전구역 및 임무 설명 자료를 화면에 띄웠다. 5분도 채 안돼 예비군은 우후죽순 고개를 떨구고 눈을 감았다.
흔한 예비군 풍경이었다. 새로울 것도 없는 이 예비군 훈련 풍경은 이날 따라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최근 불거진 박찬주 육군 제2작전사령관과 부인의 공관병 등에 대한 '갑질' 사건이 머리 속에 겹치면서다.
#1) '갑질'의 시작, 반말
장교출신 동대장은 시종일관 존댓말로 예비군을 대했다. 반면, 예비군은 현역 병사에게 반말을 했다. 한 예비군이 현역 병사에게 다가가 물었다.
“전역까지 얼마 남았어?”
“OO 남았습니다, 선배님.”
군기가 바짝든 이등병은 군대식 존어체로 답했다. 이 둘은 이날 처음 본 사이다. 나이차도 얼마 안나 보였다. 그럼에도 예비역은 반말을, 현역은 깍듯이 존댓말을 쓴다. 군대를 몇년 먼저 제대했다는 이유로 난생 처음 본 군인에게 당연한 듯 반말을 일삼는 예비군들. 어쩌면 이 역시 흔한 광경이라 치부할 수 있지만 현역 시절을 떠올려보면 괴상한 일이다. 군대에선 자대 선·후임 외 다른 부대 군인끼리도 존댓말을 쓴다. 그러나 많은 예비군이 현역 군인에게 반말을 한다. 현역 군인 모두가 자신의 부대 후임병인양 말이다.
이등병 옆을 지나는 선임에게 "반말하는 예비군이 많냐"고 물었다.
“향방은 연차가 있어 그나마 낫습니다. 동원은 말도 못합니다.”
동원훈련은 1년 며칠을 입소해서 예비군을 치른다. 그러면 현역 군인은 예비군 사단으로 지원을 나간다. 이 곳에서 겪는 예비군의 '갑질'는 동사무소 향방훈련 비할게 못된다고 했다. 반말은 기본이고, 식사시간이면 "이걸 사람 먹으라고 주는거냐", "이런 건 너네(현역 군인)나 먹는거지’ 같은 폭언성 발언도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다만 간부에겐 예외다. 간부는 예비군의 언행이 훈련 규정에 어긋나면 바로 강제 퇴소시킬 권한이 있다. 강한 간부에겐 약하고, 약한 병사에게 강한 존재가 바로 예비군 '선배님'이다.
#2) 군복만 입으면
같은 날 뉴스래빗 기자 B는 동원훈련장으로 입소해 3일을 보냈다. 퇴소 뒤 그가 전한 다수 예비군의 언행은 앞선 병사가 지적한 '갑질'과 유사했다. 오죽하면 훈련소 대대장이 입소식부터 “현역 병사들 괴롭히지 마시고 내 동생이라 생각해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예비군의 '갑질'은 관행이란 이름으로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때마침 훈련 도중 비가 내렸다. 그러자 한 예비군이 병사에게 "왜 A급(새 것) 우의를 안 주냐"고 언성을 높였다. 병사와 언쟁이 오가더니 "나 무시하냐"라는 고함이 터졌다. 병사는 쩔쩔맸다. 생활관으로 돌아온 예비군은 짜증난다는 듯 비에 젖은 우의를 병사가 쓰는 침상 위로 내팽겨쳤다. 너나 할 것 없었다.
엄격히 다뤄야할 총도 병사 자리에 던졌다. 생활관에 마련된 총기보관함보다 더 많은 총이 쌓였다. 하늘 같은 선배 예비군이 짜증났으니 뒷정리는 후배인 병사 네가 하라는 뜻이었다.
같은 시간 옆 생활관에선 웃음소리가 터졌다. 예비군과 병사는 숫자 맞히기 손등치기 게임을 했다. 계속 두들겨 맞은 일병은 손등이 벌겋게 변해도 "그만하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이를 본 주변 예비군만 깔깔 웃고 있었다.
#3) 장난이 심하다
신형 전투복을 입고 온 한 예비군은 자신의 병장 계급장을 떼 일병 병사와 바꿔달았다. 구형 전투복과 달리 신형은 계급장을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다. 이어 예비군은 일병의 선임 상병 병사를 불렀다. 갑자기 후임병인냥 비아냥 가득한 존댓말로 상병을 놀렸다. 병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난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 4년차 예비군 중 한명은 총기 주요부품인 가스 마개를 훔치려다 적발됐다. 그는 "장난 좀 쳤다"며 웃어 넘겼다. 총기 훼손도 예비군에겐 장난이다. 훔칠 생각이 없었다면, 현역 병사를 안절부절 못하게 하려는 장난일테다. 이 예비군은 다시 낄낄거리고 웃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 사병은 '죽을' 수도 있다.
#4) 내로남불
지난 8월 13일 동원훈련 입소 후 상관을 모욕하고, 부당한 행위를 강요 혐의로 기소된 예비군조모 씨(25)는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 받았다.
조씨는 지난 2016년 8월 대대장에게 “당신이 뭔데 나한테 명령이냐” 소리치며 “당신이나 잘해”라고 욕설을 내뱉고 모?한 혐의를 받았다. 당시 대대장은 현역 병사를 괴롭히지 말라고 지시를 했지만 예비군은 따르지 않았다. 조씨는 생활관에서 병사에게 제식동작 및 제자리걸음 등을 강요했다고 한다. 재판부는 "법정에서까지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을 하며 시종일관 범행을 부인하는 등 범행 뒤의 정황도 좋지 않다"면서도 "치기 어린 마음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감안해 징역형의 집행은 유예한다"고 판결했다.
상관 욕설 등 모욕죄를 빼면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조 씨의 언행과 유사한 '병사 괴롭히기'가 예비군 훈련장 곧곧에서 수십년째 반복되고 있다. 반말하고, 무례하게 놀리고, 심한 장난을 걸고, 전투모를 대신 들게 하고, 총기를 정리하라고 시킨다. ‘갑질'을 일삼는 보통 예비군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들킨 '갑질'과 들키지 않은 '갑질', 도를 넘어서는 '갑질'과 아닌 '갑질'이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 군대는 최근 혹독한 '갑질' 사태를 겪었다. 박찬주 육군대장 부부가 아들 나이인 공관병과 조리병을 상대로 온갖 잡일을 시키는 '갑질’을 일삼았다는 폭로가 터지면서다. 사건을 조사한 군인권센터는 이들 대장 부부가 공관병을 언제든 부를 수 있도록 호출용 전자팔찌를 채웠고, 화장실 사용을 통제했고,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으며, 수차례 폭언 등을 일삼았다고 지적했다. 소식을 접한 대중들은 분노했다. 이어 군대에서 온갖 치졸한 '갑질'을 겪은 유사 피해자들의 하소연이 빗발쳤다.
박 사령관은 결국 지난 2일 자진 전역을 신청했다. "지난 40년간 몸담아 왔던 군에 누를 끼치고 군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자책감을 견딜 수 없다"고 그 배경을 밝혔다. 박 사령관의 부인은 지난 7일 군 검찰에서 "공관병을 아들 같이 생각했다"고 해명해 오히려 여론의 분노를 키웠다.
예비군의 '갑질'과 육군 대장의 '갑질'은 그 수위나 사회적 파장 면에선 차이가 있다. 하지만 두 사건의 근간엔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겐 약한' 폭력성 심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
군대는 스무살을 갓 넘긴 어린 청년들이 처음 계급에 따른 무조건적 상명하복과 맞딱뜨리는 공간이다. 사회에선 좀처럼 계급적 '갑'이 될 수 없는 청년들이 어쩌면 처음 무소불위의 '갑'으로 점점 성장하는 곳 말이다. '갑질'도 내로남불, 내가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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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김민성, 연구= 이재근 한경닷컴 기자 rot011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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