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 당신이 잃어버린 것은… 종잇조각처럼 잔해가 된 과거를 돌아보다

입력 2017-08-28 20:30
수정 2017-08-28 23:25
'천사-유보된 제목' 리뷰



공연을 ‘체험’하는 동안 고독과 공포, 잃어버린 것에 대한 슬픔, 어렴풋한 희망 등이 빗발처럼 쏟아졌다. 서울 예장동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29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열리는 공연 ‘천사-유보된 제목’은 감각과 사유를 쉼없이 자극한다. 단순히 보는 공연이 아니라 체험하는 공연인 까닭이다.

지난 27일 최종 리허설을 통해 미리 맛본 이 공연은 형식부터 특이했다. 같은 시간대에 수십 명의 관객과 함께 보는 일반적인 연극과 달리 이 공연의 관객은 단 한 명뿐이다. 이 작품을 연출한 서현석은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와 그의 애장품이던 파울 클레의 그림 ‘새로운 천사’에서 작품의 제목과 주제의식을 길어올렸다고 했다.


어두컴컴한 극장에 들어서면 천사의 현신인 듯 흰 옷을 입은 여성 배우가 나타나 작은 불빛을 비추며 극장 곳곳으로 안내한다. 분장실, 매트리스가 놓인 어두운 방, 흰 종잇조각들이 바닥에 쌓여 있는 공간 등이다. 공연은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금은 갈 수 없는 추억의 장소가 있나” “어린 시절 별명이 무엇인가” “다시 태어나면 뭐가 되고 싶나”. 마지막에는 “아이였던 너는 모든 게 새로웠고 작은 단어 하나로도 우주까지 여행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모든 게 클리셰가 됐다”는 말로 어린 시절과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낯설고 몽환적인 상황들이 감각을 일깨우고 생각을 자극한다. 공연 처음과 마지막에 쓰는 가상현실(VR) 고글이 주는 경험도 새롭다. 관객 지위를 관람자에서 참여자로 전환하고, 희곡과 무대, 배우, 관객 등 기존 연극 요소를 해체한 뒤 혼합하는 현대 연극의 흐름이 반영돼 있다.

다만 실험성이 높은 작품의 특성상 스타일이 본질을 압도하는 순간이 종종 있다. 분장실에서 여배우를 비추던 조명이 빠른 속도로 깜빡이며 귀신의 집 체험을 연상시키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서 연출은 벤야민이 천사에게서 비애와 애수, 공포를 읽었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여기서의 공포는 인간 존재 깊은 곳에 있는 근원적 두려움이지 단순히 무섭게 연출된 이미지가 자아내는 공포는 아닐 것이다. 매트리스가 있는 방 등에서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여인과 아이의 목소리는 작고 또렷하지 않아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도 어려웠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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