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1심 선고 이후
[ 좌동욱 기자 ]
“삼성이 지금 같은 위기를 맞은 적은 없습니다. 나라 경제를 위해서라도 임직원들이 비상한 각오로 일해야 합니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과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전 삼성전자 사장) 등 삼성 출신 경영자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5일 실형을 받은 데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또 이 부회장 부재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뤄진 사장단 및 임원 인사를 제때 단행해 흐트러진 분위기를 바로잡고 전문경영인을 중심으로 집단지도체제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금이 가장 위험한 시기”
윤 전 부회장과 진 회장은 우선 그룹의 리더십 부재가 삼성뿐 아니라 국가경제적으로 큰 손실이 될 것을 걱정했다. 진 회장은 “20여 년 전 이 부회장이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할 당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같은 글로벌 기업인들을 함께 만나러 다닌 기억이 난다”며 “그동안 이 부회장이 세계 기업인들을 만나며 구축한 비즈니스 네트워크가 이대로 사장될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이 부회장 개인에 대해 “억울한 심정이 많겠지만 이번 시련을 조용하게 수양하고 공부할 수 있는 긍정적인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윤종용 전 부회장은 “삼성과 이 부회장이 정치적 오해로 고초를 겪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이런 때일수록 임직원들이 똘똘 뭉쳐 위기를 이겨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최근의 반도체 호황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 있는 것이 역설적으로 ‘미래의 위기’로 다가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평소 위기에 대비하고 위기의식으로 무장한 기업에는 실제 위기가 닥치지 않지만 그 반대의 조직은 어김없이 낭패를 겪었다는 것이 글로벌 기업들의 역사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삼성전자가 글로벌 1위 전자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배경엔 창업주와 삼성 임직원뿐 아니라 국민의 도움이 있었다”며 “삼성전자는 선진국들도 탐내는 한국의 보배인 만큼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도체제 꾸려야”
이들은 또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과거와 같은 규모의 그룹 조직은 만들기 어렵겠지만 컨트롤타워 기능과 역할은 어느 정도 복원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윤 전 부회장은 “전자, 금융, 기타 그룹 등 3개 그룹으로 나눠 삼성전자와 같은 주축 회사를 중심으로 협업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물론 이 경우에도 신규 사업 투자, 사업 구조조정, 사회공헌 등은 현재와 같은 조직으로 대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진 회장은 “이 부회장이 출소하기 전까지 과도기적으로 전문경영인들로 집단지도체제를 구성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로 구성된 SK그룹의 수펙스추구협의회나 거물급 전문경영인(이채욱 CJ 부회장)을 내세워 위기를 넘긴 CJ그룹 사례 등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너, 미래전략실, 계열사 CEO 등 3각 체제로 운영돼온 삼성그룹을 단기간에 미국과 같은 이사회 중심 경영 체제로 바꾸기가 쉽지 않으니 과도기 체제가 필요하다는 진 회장의 판단이다.
그동안 보류해온 인사도 서둘러 매듭을 지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진 회장은 “삼성 임직원이 지금까지 총수(이 부회장)가 석방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1심 결과를 기다려왔을 것”이라며 “이제 결과가 나왔으니 사장단 인사나 투자 현안 등 미뤄놓은 일들을 검토하고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전 부회장도 “인사가 적기에 적재적소에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조직이 느슨해지고 활력을 잃게 된다”며 “삼성의 인력풀은 두텁고 훈련도 잘 돼 있어 지금 인사를 단행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이 2014년 5월 병으로 쓰러진 이후 큰 폭의 사장단 인사를 보류하고 있다.
■ 윤종용 1997년부터 2008년까지 12년간 삼성전자 대표이사를 맡았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면서 삼성전자의 글로벌 도약을 이끈 주역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 진대제 2000년대 초 삼성 반도체 사업의 비약적 성장을 이끌었으며 노무현 정부에서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냈다. 현재 사모펀드 스카이레이크를 이끌고 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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