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의 '작은 보석' 몰타
세상의 모든 해변 모였나 … 색과 빛의 유혹
바위 깎아낸 '천연 수영장'에선 멋진 다이빙!
버스로 한 정거장만 이동해도 눈 앞에 전혀 다른 풍광 펼쳐져
비포장도로·바위·잡초 많아 불편하지만 사라지지 않았으면 …
몰타 여행을 준비하는 내내 들은 질문은 몰타가 어느 나라 도시냐는 것이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바로 아래 있는 제주도 6분의 1 크기의 작은 섬나라라고 대답해 줘도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 자체로 연상되는 이미지가 흐릿하기에 이탈리아 또는 튀니지로 연결 지어 보지만 몰타는 몰타다. 아직 발을 디디지 못했어도 유럽의 많은 나라는 기차로나마 지나치며 눈인사 정도는 해보았기에 정확한 위치도 짐작할 수 없는 곳으로 떠나는 기분은 신선했다. 몰타라는 이름에 강렬한 색과 잊혀지지 않는 소리로 빚은 기억을 주렁주렁 매달아 주기 위해, 아는 것이 전혀 없는 상태로 용기백배해 여름 휴가지를 정했다. 온전히 몰타에만 푹 빠질 수 있도록 꼭 가고 싶었던 사르데냐섬과 시칠리아의 못 가본 해안가 도시들은 가지 않았다. 주어진 모든 자유로운 낮과 밤을 몰타에 쏟으리라. 어렵지 않은 결정이었다. 여행자가 여행지에 주는 것보다 여행지가 여행자에게 주는 것이 언제나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해변마다 각각 다른 매력이 물씬
몰타에 머무는 열흘 내내 가장 중요한 일과는 새로운 해변을 찾는 것이었다. 몰타를 에워싸고 높고 낮게 찰랑이는 파도는 서로 같지 않아, 버스 한 정거장만 이동해도 완전히 다른 풍광 앞에 서게 된다. 수도 발레타와 가장 가까운 슬리에마 해변은 바다로 내려가는 사다리 몇 개를 바위 여기저기에 꽂아 놓아 만들었다.
20대 초반 무리가 떼지어 묵는 파티 타운 파체빌에는 수영보다는 새벽까지 쉴 새 없이 맥주와 와인을 들이켤 분위기를 돋우는 작은 해변이 있다. 다이빙과 서핑 등 수상 스포츠 업체가 모여 있는 넓고 맑은 멜리에하 해변은 몇 번이나 찾았다. 섬 반대편으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달리면 이름에 걸맞게 황금빛으로 빛나는 골든 베이가 있다. 거침없이 파도를 넘는 서퍼들을 구경하며 바위 언덕을 넘어 임좌르 해변으로 가는 길은 텅텅 비어 혼자 걸었다. 헤아릴 수 없이 넓은 바다를 독차지하고 있다는 벅찬 기분이 들었다. 여행을 할 때나 안 할 때나, 고생스러운 길일수록 붐비지 않는 것은 똑같다.
건조한 지중해의 여름을 찾은 여행자는 여유를 부릴 수 없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면 무언가 나오겠지, 하는 생각은 몰타에서는 접어 둬야 한다. 유럽의 인기 휴양지로 사랑받은 지 꽤 됐지만 그래도 아직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비포장 도로와 바위와 잡초가 가득하다. 지면에서 피어 오르는 아지랑이는 하얀 살갗을 사정없이 할퀸다. 일기예보에 바람이 분다고 해 다행이라고 말했더니 ‘얼굴에 헤어드라이어를 가져다 대는 느낌’이라며 빙긋 웃던 호텔 직원의 말이 딱 들어맞았다. 그러니 온종일 얼른 바다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수없이 많은 겹의 파도를 들추다 힘에 부치면 바깥으로 나와 물기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엎드려 쉬면 된다. 맥반석에 구운 달걀처럼 노릇해질수록 행복했다.
불편한 것 많지만 그것이 더 매력적
몰타를 작은 섬이라고 얕잡아 보면 안 되는 것이, 휴가를 떠나 온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새벽같이 일어나 밤 늦게까지 곳곳을 누볐는데 열흘이 빠듯했다. 다음에 올 이유를 만든다는 뻔한 핑계를 대며 가보지 못한 곳도 있다. 한 번 비치 타월을 깔고 누우면 시간이 언제 가는지 모른다. 그 여유로운 풍경에 압도되고 만다. 몰타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몰타의 버스도 여기에 한몫한다. 몰타인으로 가득한 만원버스는 시간표를 지키지 않는다. 그늘 한 점 없는 정류장에서 빨래처럼 바싹 마르는 시간이 무척이나 많았다.
바다를 좋아하는 이유가 제각각이듯 몰타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해변은 모두 같지 않을 것이다. 몰타를 처음 찾는 여행자가 딱 한 곳만 추천해 달라고 하면 모두가 입을 모아 ‘세인트 피터스 풀’을 가리킨다. 몰타 최남단, 아주 불편한 곳에 있다. 숙소에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한참을 달려 정류장에 내려서 30분을 걸어야 갈 수 있었다. 몰타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명소인데 더 가까이에 정류장을 만들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나 보다. 길도 닦여 있지 않아 바람이 세게 불면 모래 먼지를 뒤집어 쓴다. 장난처럼 적어 놓은 표지판을 따라 마침내 도착한 바다는 태어나 처음 보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바위로 만든 커다란 케이크를 누가 한 입 크게 베어 문 듯 파인 높은 절벽의 천연 수영장이다. 시원하게 점프해 입수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다 용기를 내어 뛰어본다. 체공시간을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높이다.
이곳에서는 목이 마르기 전에 음료수를 사야 한다. 가파른 바위 길을 꽤 걸어 올라가야 아이스박스 하나를 짊어지고 장사하는 꼬마를 만날 수 있다. 목이 타기 시작했을 때 출발하면 올라가는 길이 무척 힘들다. 점심이 지나고 느지막이 출근한 아이스크림 트럭에서 레몬 셔벗 한 컵을 사 들고 아침에 본 선인장과 페인트가 벗겨진 자동차를 다시 지나쳐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가는 길은 고되지만 행복하다. 편리하지 않은, 빠르지 않은 것들을 하려고 떠난 여행이니 불편하지도 귀찮지도 않다. 여행자는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변하면서 여행지는 지금 모습 그대로 남아 있길 바란다. 이기적이고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너무 늦지 않은 미래에 다시 만나면 지금과 꼭 같은 모습이기를 기원해본다.
음식은 맛없지만 친절한 사람들
몰타 여행자들이 평균적으로 머무르는 기간이 8.5박이라고 한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24시간을 넘기지 않고 떠나는 여행자가 대부분이라 하니 매우 긴 시간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몰타는 자연도 문화도 음식도 사람도 여러 번 겪어봐야 알 수 있다. 나름 새로운 곳에서의 적응 속도가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몰타에서만 유독 시간이 걸린다. 인접한 국가도 거의 없지만 그 어떤 곳과도 닮은 구석이 없기 때문이다. 몰타의 유일한 단점은 음식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발길 닿는 대로 헤매다 아무 곳에나 들어가도 깜짝 놀랄 만한 맛의 파스타와 피자를 매 끼니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몰타에서는 열심히 조사해서 최고의 맛집으로 소문난 곳만 찾아 다녔는데 한 접시를 비운 적이 없다. 입맛이 그리 까다롭지 않은 편인데 일정의 마지막 며칠은 서툰 요리 솜씨로 직접 차려 먹어야 했다. 몰타 음식은 이렇다 할 대표적인 전통 메뉴는 없고, 여러 유럽 국가의 요리를 이곳 식재료와 방법으로 조리한 것이다. 한 입 먹고는 바로 숟가락을 내려놓는 일이 흔했다. 어떤 음식은 간이 덜 됐고, 고기가 덜 익기도 했다. 한마디로 맛이 없다. 열흘 내내 운이 없어 제대로 된 식당을 한 곳도 못 찾은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이도 저도 아닌 음식과는 달리 몰타 사람들의 특징은 바로 알아챌 수는 없지만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무안하게 빤히 쳐다보지도, 부담스럽게 두 팔 벌려 환영하지도 않지만 몰타 사람들은 예외없이 친절하다. 뙤약볕에 기약 없는 길을 걸어 정류장을 찾노라면 할머니, 아저씨, 학생 할 것 없이 한 번씩은 차를 세우고 태워 주겠다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옆 자리 사람에게 버스 종점을 확인하면 고개 한 번 끄덕여 주고 말다가도 15분이 지나면 ‘이제 반 온 거야’, 10분이 더 지나고는 ‘다음 역에서 내리는 거야’라고 두 번 세 번 일러줬다. 이탈리아어와 아랍어가 섞인 발음을 뱉어내는데, 재촉하지 않는 느릿한 화법도 그들답다. 말문이 막혔을 때, 어색한 고요함을 채울 때 영어권 사람들은 ‘well…’ 하고, 우리는 ‘음…’ 하며 의미 없는 소리를 내는데 몰타 사람들은 ‘멜라…’라고 한다. 나지막이 읊조리는 소리가 입에 착 붙는다. 계산대 앞에서, 메뉴판 앞에서 멜라가 절로 나오려니 환하게 웃으며 반기던 몰타 사람들이 투명한 그들의 바다만큼이나 그립다.
‘섬 속의 섬’ 고요하고 깊은 고조 섬
몰타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조금만 이동해도 완전히 다른 역사와 문화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몰타 본섬에서 보트로 30여 분만 가면 나타나는 고조 섬이 이번 여행 속 여행이었다. 채도 높은 몰타에서 파스텔빛 고조 섬으로 넘어오니 그 대조가 강렬했다. 방음실에 들어선 것 같은 잔잔한 고요함이 이 섬을 강하게 누르고 있다. 이 섬에서는 고양이도 더 느릿하게 기어가고 파도도 왠지 더 얌전하게 살랑대는 것 같았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서 님프 칼립소가 오디세우스를 7년 동안 잡아 뒀던 섬이다.
고조는 신화 속 거인들이 만들었다고 해 몰타어로 ‘거인들의 것’이라는 뜻이다. 고조의 상징과도 같았던 석회암 아치가 올 3월 파도에 무너져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고조도 몰타처럼 섬의 모든 굴곡에 빼어나게 아름다운 해변이 자리하고 있다.
고조 섬 북쪽 끝에 있는 가스리 협곡에는 스무 명 이상은 자리 잡고 눕기가 어려울 정도로 좁은 자갈 해변이 있다. 파란 물에 초록색 물감을 풀다 만 듯 사방으로 흩어지는 청록 빛깔 물살에 몸을 맡기고 새벽같이 일어나 버스와 보트를 반복한 여독을 풀었다. 끝을 모르던 물 위의 휴식을 갑자기 나타난 해파리가 끊어 놓았다. 기겁해 놀라 달궈진 자갈로 뛰어 나오니 벌써 돌아갈 시간이다. 고조를 떠나 몰타로, 몰타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는 자리에 아쉬움의 작은 조각들을 걸어 놓았다.
여행정보
인천에서 몰타 공항으로 취항하는 직항 비행기 편은 없다. 유럽 거의 모든 도시에서 몰타 국적기 에어 몰타(Air Malta)를 비롯한 많은 항공사가 몰타 노선을 운항해 1회 경유로 찾을 수 있다. 유럽에 있는 나라 안에서 여행자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솅겐 국가에 속해 별도 비자 없이 3개월까지 머무를 수 있다. 연간 방문자가 200만 명에 달하는데 이 중 190만 명은 7, 8월에 오는 것 같다는 몰타 사람들의 반 농담처럼, 여름 성수기의 몰타는 매우 붐빈다. 7, 8월 몰타 여행자는 숙소와 항공편, 보트 티켓, 근교 투어 프로그램과 섬에서의 레저 액티비티 등을 미리 예약해야 한다.
서유럽과 대등한 물가에 비해 맛집은 그리 많지 않아, 주방이 딸린 아파트식 호텔이나 콘도를 빌려 머무는 것이 경제적이다. 몰타에서 보트를 타고 이동해 즐기는 고조 섬과 코미노 섬에는 첫 버스, 첫 보트를 타고 입성해야 검색 엔진에서 본 에메랄드빛 바다를 온전히 즐길 수 있다.
몰타=글·사진 맹지나 여행작가 missginamae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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