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구체적 청탁 없었지만, 정유라 지원은 묵시적 부정청탁"

입력 2017-08-25 17:41
이재용 부회장 징역 5년

핵심쟁점 뇌물죄 '부분 유죄' 이유는
이재용·박근혜 3차례 독대서 청탁 없었다고 인정했지만
특검이 제시한 '승계작업 프레임'은 받아들여
미르·K스포츠 출연은 '강압'…뇌물 인정 안해

'묵시적 청탁' 근거 제시 안해…논란 부를 듯


[ 고윤상 기자 ]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가 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선고 공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가장 핵심이었던 뇌물공여죄에 대해 재판부는 ‘일부 유죄’로 판단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구체적인 부정 청탁을 하지 않았지만 ‘경영권 승계’를 위한 간접적·묵시적 청탁이 있었다는 취지다. 특검이 주장한 뇌물액 77억9735만원 가운데 마필 운송차량 구입비 5억원을 제외한 72억원을 뇌물로 인정했다.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 출연금은 뇌물이 아니라고 판시했다. 특검의 공소사실 중 재판부가 인정하지 않은 뇌물액은 총 209억원이다.


◆현안에 대한 부정 청탁 없었지만…

재판부는 뇌물죄 판단에서 부정한 청탁에 따라 금품이 오갔는지에 집중했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등 개별 현안 청탁과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 문제를 둘러싼 포괄적 현안에 대한 청탁으로 나눠 판단했다. 부분과 전체를 나눠 판단한 것이다.

또 개별 현안과 포괄적 현안에 대한 청탁이 명시적인지 간접적·묵시적인지를 각각 나눠서 설명했다. 묵시적이더라도 양측이 서로의 요구를 알고 있었다면 처벌할 수 있다는 판례에 따라서다.

우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문제,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과정, 신규 순환출자 고리 해소 등 개별 현안에는 아무런 부정한 청탁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피고인의 단독 면담에서 개별 현안에 대한 청탁이 있었다고 인정할 수 없다”며 “합병 관련에서는 1차 단독 면담 때 계획 자체가 없었고 안종범 수첩에도 그런 사실이 없다”고 설명했다. 명시적 청탁은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개별 현안에선 간접적·묵시적 청탁도 없다고 봤다. 합병과 관련해 이 부회장 등이 국민연금공단 측을 만나 합병을 도와달라고 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이는 공단 측이 먼저 요청한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또 합병에 대해 청와대 측에 구체적인 청탁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승계 위한 묵시적·간접적 청탁”

하지만 재판부는 ‘승계작업’이라는 포괄적 현안을 위해 간접적·묵시적으로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보고 뇌물죄를 유죄로 판단했다. 부분으로 보면 문제가 없지만 ‘큰 그림’을 보면 뇌물이 성립한다는 논리다. 특검이 제시한 ‘승계작업 프레임’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론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재판부는 “특검이 공소사실에서 제시한 개별 현안 중 삼성SDS 및 제일모직의 유가증권시장 상장,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은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또는 삼성생명에 대한 지배력 확보에 유리한 영향을 끼쳤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정유라에 대한) 승마 지원과 영재센터 지원에선 승계작업에 관해 대통령에 대한 묵시적인 부정한 청탁이 있었음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승마 지원 부분에 대해서는 박 전 대통령의 승마 지원 요구가 최순실 씨와의 공모에 의한 것이라고 적시했다.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의 공모 여부가 뇌물공여죄 논리의 근간을 이룬다는 얘기다. 하지만 공모에 대한 구체적 증거는 아직 어느 재판부에서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중론이라 논란이 예상된다.

재판부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대화를 근거없이 추론했다고 지적받는 부분도 있다. 재판부는 2016년 2월15일 3차 독대에서 두 사람 사이에 영재센터 지원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고인들의 진술 신빙성을 높게 평가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를 종합해 이 부회장이 영재센터에 직접 관여했다는 게 재판부의 판결 내용이다. 독대 당시 JTBC 관련 질책이 쏟아져 다른 이야기를 할 수조차 없었다고 한 이 부회장의 증언은 반영되지 않았다.

승마 지원 등에 대해서는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사이에 직접적인 대화 내용을 알 수 없다고 하더라도 승계작업을 위해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공여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묵시적 청탁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는 언급되지 않았다.

◆미르재단과 승마지원에 이중잣대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 부분에 대해서는 이중잣대가 적용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최씨가 사적 이익 추구 수단으로서 재단을 설립하고 운영한다는 점을 알았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고,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정해준 가이드라인을 따라 수동적으로 지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원 과정에서 강압적인 측면이 있었다고도 했다.

이 부분의 논리성이 가장 취약해 보인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미르·K스포츠재단을 지원한 것도 삼성이고 승마 지원을 한 것도 삼성인데 이쪽에서는 어쩔 수 없는 지원이고 저쪽에서는 대가를 노린 지원이었다고 한다면 어떤 기준을 적용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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