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쟁이 예언만 믿고 딸 살해 결심…귀족의 고상함 뒤에 감춰진 욕망

입력 2017-08-21 20:13
수정 2017-08-22 06:58
프랑스 소설가 아멜리 노통브 '느빌 백작의 범죄' 출간


[ 심성미 기자 ]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이 주최하는 마지막 파티에서 누군가를 살인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다면. 이 이야기를 듣고서 셋째 딸이 자신을 죽여달라고 간절히 부탁한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기발한 상상력으로 프랑스 문단을 주도해온 작가 아멜리 노통브(사진)의 《느빌 백작의 범죄》(열린책들)가 지난 20일 국내에 출간됐다.

책의 배경은 2014년 가을 벨기에. 느빌 백작은 가문이 파산할 지경에 이르자 대대손손 살아온 플뤼비에 성(城)을 매각한다. ‘접대의 귀재’인 그는 성을 팔기 전 마지막으로 그곳에서 가든파티를 열기로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점쟁이에게 “곧 있을 마지막 가든파티에서 당신이 초대 손님 중 한 명을 죽일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예언을 듣는다. 느빌 백작은 불면에 시달리며 자신의 초대 손님 중 살해하기에 적합한 인물을 찾는다.

불길한 분위기의 정점은 셋째 딸 세리외즈가 느빌 백작에게 “제발 나를 죽여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다. 아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정서적 불감증을 호소하는 그녀는 죽어서 자신이 처한 지옥 같은 상태를 벗어나려 한다.

소설 전반적으로 기이한 분위기가 흐르는 이유는 느빌 백작이 점쟁이의 말을 거스르지 않고 그의 말대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어 버린다는 데 있다. 이는 ‘귀족의 가든파티’라는 해묵은 전통에 집착하는 그의 태도와도 맞물린다.

느빌 백작은 그토록 증오하던 아버지를 닮았다. 그의 아버지는 병으로 죽어가는 딸을 돈이 없어 치료하지 못하는데도 플뤼비에 성을 팔지는 않는다. 그 와중에도 한 달에 한 번 귀족들을 초대해 호화롭게 대접한 아버지를 증오했지만 결국 같은 길을 걷는 것이다.

‘딸의 기묘한 언변’에 설득된 느빌 백작은 딸을 살해하기로 결심한 순간에도 딸이 죽는 것이나 살인으로 인해 자신이 감옥으로 가는 것보다 ‘오늘의 파티가 생애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훨씬 슬프다. 그가 제일 집착하는 건 허울뿐인 귀족으로서의 삶이다. “내가 살해하는 건 내 딸만이 아냐. 내가 끝장내는 건 바로 이 세계야. 난 낡아버린 궁정풍의 정중함, 함께하는 우아한 예술의 마지막 대표자야.”(129쪽)

구태를 답습하는 이들 주인공에게는 시종일관 불운이 멈추지 않는다. 아무런 반성 없이 그저 주어진 의무를 수행하는 느빌 백작은 ‘가든파티의 주인공’에 어울리는 고상함을 꿈꾸지만 결국 딸을 살해할 결심을 할 정도로 인륜을 거스르는 행위를 서슴지 않는 비참함만 보여준다.

롤러코스터처럼 비극으로 치달을 것 같던 이 이야기는 소설의 맨 마지막 페이지에서 기막힌 반전을 보여준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반전은 소설을 동화적으로, 한편으로는 사랑스럽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여신의 분노를 풀고 전쟁에 나서기 위해 막내딸을 산 제물로 바친 아가멤논 신화, 오스카 와일드의 ‘아서 새빌 경의 범죄’ 등에서 다양한 설정을 끌어와 차용한 것도 눈길을 끈다.

다소 황당한 설정과 이야기 전개가 독자의 공감을 자아내기 쉽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 길지 않은 소설은 한 번 손에 쥐면 놓기 쉽지 않을 정도로 다음 이야기와 인물의 대사가 궁금해진다는 점이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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