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글 기자코너]《시계태엽 오렌지》를 읽고 선(善)을 생각하다

입력 2017-08-21 09:01
유혹을 느끼는 것은 똑같지만 실천 이성으로 이것을 이겨내고 선의 의지만을 남기면 도덕적인 사람이 된다.

16살 알렉스와 그의 패거리는 폭력과 비행을 밥 먹듯이 저지르고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자제 없는 짐승처럼 그는 길 가던 노인을 폭행하고 여인을 강간한다. 급기야 살인마저 저질러 14년 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된다. 알렉스는 14년의 형기를 2주일로 줄여 준다는 얘기를 듣고 교도소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가에서 새로이 실행하는 범죄자 갱생 계획인 루도비코 요법에 지원한다. 이 요법은 일종의 조건반사를 알렉스의 머리에 각인시켜 놓는다. 요법을 받은 그는 폭력적이고 잔인한 생각을 하면 머리가 터질 듯이 지끈거리고 아프기 시작하며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아진다. 고통을 멈추기 위해서 그는 생각과 반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엔서니 버지스의《시계태엽 오렌지》에 나오는 얘기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 주위에 차가 없고 사람들이 무단횡단을 한다면 나도 주위를 둘러보고 그냥 건너고 싶다. 나만이 아니라 아마 누구나 그럴 것이다. 유혹을 느끼는 것은 똑같지만 실천 이성으로 이것을 이겨내고 선의 의지만을 남기면 도덕적인 사람이 된다.

태어날 때부터 범죄와 폭력의 욕망을 느끼지 않는 것과 그것을 느끼나 지속적으로 자신을 억제해 가는 것 중에 무엇이 위대한가. 중요한 것은 선 그 자체가 아니다. 선을 위해 자신 내면의 충동을 억누르고 항상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법으로 선행을 강요하고 형벌과 공포로 질서를 세운다면 알렉스는 예의 바른 시민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여전히 악이 가득하고 자신을 위장하는 방법만 배웠을 뿐이다.

선을 선택하게 해야지 강요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머리에 태엽을 꽂아 이리저리 돌려대면서 행동을 결정할 수는 없다. 선택은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고유의 권리, 그것을 빼앗긴다면 살아있는 인간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유혹을 극복하고 도덕적으로 변하든 그렇지 않든 그는 선택할 수 있기에 인간이다. 선을 강제로 실천하는 것보다 악을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 더욱 인간답다.

채원준 생글기자(일산대화고 2년) karren72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