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살아남기
메리 로치 지음 /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352쪽 / 1만6000원
[ 서화동 기자 ]
전쟁터에선 총탄만 무서운 게 아니다. 1848년 멕시코전쟁에선 미국인 1명이 전투로 사망할 때 7명이 병으로 죽었다. 대부분은 설사 때문이었다. 미국 남북전쟁 땐 설사나 이질로 죽은 병사가 9만5000명에 달했다.
베트남전쟁에서는 말라리아에 걸려서 입원한 군인보다 설사병으로 입원한 군인이 거의 4배 더 많았다. 설사병을 예방·치료하는 분야의 주요 발전에 대부분 미군이 관여해온 이유다.
이집트 카이로에 있는 미국 해군의료연구소 3팀(NAMRU-3)은 설사 방지 연구 분야에서 세계 최고에 속한다. NAMRU-3의 초대 지휘관 로버트 필립스 대령은 재수화액에 포도당을 첨가하면 장의 염분과 물 흡수력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아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했다. 의학 학술지 랜싯(Lancet)은 필립스 대령의 발견이 ‘금세기의 가장 중요한 의학적 발전’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미국의 여성 과학저술가 메리 로치(58)가 쓴 《전쟁에서 살아남기》는 군사과학, 전쟁과학에 관한 책이다. 하지만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는 건 핵잠수함이나 스텔스 전투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같은 첨단 살상무기가 아니다. 전쟁터에서 사람을 덜 다치게 하거나 살리는 데 필요한 과학이다.
저자의 관심은 병사들의 식중독과 설사를 막는 것부터 다양한 전투상황에서 피부를 보호하기 위한 전투복, 폭발물 지대에서 차량을 운전하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장비, 총탄이나 포탄 소리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방법, 시신을 활용한 연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군대가 첨단기술로 무장하면서 현대의 군복은 옷이라기보다 하나의 시스템에 가깝다. 온갖 기기와 그 기기들을 작동시킬 전지와 부품이 들어간다. 이뿐만 아니라 전장에서 맞닥뜨리는 화염과 열, 폭발의 충격, 먼지, 생화학 무기로부터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
흔히 ‘네이틱(Natick)’이라고 부르는 미 육군 군인연구개발 및 공학센터의 울레트 열시험장은 치명적인 폭발과 고도화상을 실험하는 곳이다.
이곳의 첫 책임자였던 앨리스 스톨은 해군을 위한 화상연구를 하면서 1도 화상과 2도 화상의 모델을 만들기 위해 자기 팔뚝 피부를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이런 희생적인 연구 과정을 거쳐 미군은 치명적 상황에서도 사람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최적의 군복을 개발해왔다. 그중 하나가 수련의 잎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한 초방수·초발산 피막이다. 이는 화학·생물학 무기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방호복의 재료로 각광받고 있다.
미군이 개발한 철망형 장갑은 육군의 스트라이커(8륜장갑차)를 로켓포로부터 막아주는 장비인데 원리는 간단하다. 튼튼한 강철 격자로 차량을 감싸는 것. 날아오는 로켓탄은 격자의 그물코에 주둥이가 박혀서 불발탄이 된다. 이라크전에서 8륜장갑차는 포탄이 가득 꽂혀 고슴도치 같은 모습으로 귀환하곤 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쓰레기와 썩은 사체 등이 널려 있는 전쟁터의 단골손님은 파리, 구더기 같은 곤충류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7년 외과 군의관 윌리엄 베어에게 부상한 지 1주일이 지난 병사가 실려왔다. 상처는 곪아서 구더기가 우글거렸다. 구더기를 씻어내고 상처를 식염수로 씻자 놀라운 광경이 드러났다. 분홍빛 육아조직이 상처를 채우면서 새살이 돋아나고 있었던 것.
전쟁이 끝난 뒤 베어는 소독제와 수술로도 완치하기 어려운 민간인의 혈액성 감염병을 구더기로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캘리포니아 어바인의 모나크연구소는 그의 치료법을 물려받아 쓰고 있고, 미국 식품의약국은 2007년 살아있는 구리금파리 구더기를 의료기구로 정식 승인했다.
미국에서 가장 유쾌한 과학저술가로 꼽히는 저자는 사람들이 좀 거북하거나 엉뚱하다고 생각하는 주제를 집요하면서도 경쾌하게 파헤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전쟁, 과학, 무기 같은 딱딱한 소재를 말랑말랑하게 다루는 솜씨가 탁월하다. 그러면서도 묵직한 메시지를 담아낸다.그는 “용기란 주변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하려는 의지”라며 이를 실천한 이들에게 ‘진정한 영웅’이라는 찬사를 보낸다.
잠수함 탈출용 호흡장치를 시험하기 위해 포토맥강으로 뛰어든 해군 소령 찰스 스웨드 맘슨, 면역력이 생기는지 알아보려고 자기 몸에 코브라 독을 주사한 육군의학연구소의 허셜 플라워스 대위, 구더기치료법을 개발한 군의관 베어, 죽은 사람의 피를 수혈해도 안전한지 검사하기 위해 자기 몸에 시신의 피를 주사한 허먼 멀러 같은 사람이 바로 그들이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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