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창의 정치속으로] 한국당이 '보수의 희망' 못되는 까닭

입력 2017-08-17 18:54
이재창 정치선임기자 leejc@hankyung.com


보수당인 자유한국당이 위기다. 보수정권이 탄핵을 당하고 정권을 진보세력에 내줘서가 아니다. 지지율이 10%대 바닥을 헤매서도 아니다. 이는 본질이 아니다. 정권은 정신 차려 잘하면 다시 찾을 수 있고, 지지율과 지지기반도 마찬가지다. 외환위기를 맞은 김영삼 보수정권에서 김대중 진보정권(1998년)으로, 국민이 등 돌린 노무현 진보정권에서 이명박 보수정권(2008년)으로, 또 탄핵된 박근혜 보수정권에서 문재인 진보정권(2017년)으로 넘어간 ‘10년 주기 정권 교체’가 이를 잘 보여준다.

웰빙당으론 보수세력 담지 못해

보수의 지지기반이 무너졌다고 보수성향의 국민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국민 35% 안팎은 보수성향으로 분류된다. 이들이 지지할 만한 정당이 없을 뿐이다. 한국당은 이들을 담아낼 능력도 희망도 비전도 제시하지 못한다. 이것이 위기의 본질이다. 정당은 정권을 잡기 위해 이념과 비전을 공유하는 정치결사체다. 대선 참패에 대한 처절한 자기반성과 파이팅(열정), 가치와 비전 공유 등을 찾아보기 힘든 한국당은 진정한 의미의 정당과는 거리가 있다. 107명의 의원이 모인 ‘웰빙당’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국회의원의 거취가 걸린 총선거가 2년8개월이나 남았다는 게 한국당의 불행이다. 대선 참패로 지지율이 바닥인데도 위기감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다. 자성의 목소리도 희미하다. 혁신의 핵심인 인적 청산은 지지부진하다. 국민 뜻을 반영하는 상향식 공천을 지양하고 당이 내리꽂는 전략공천을 확대하겠다는 혁신위원회의 지방선거 공천방식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한다. 혁신과는 거리가 멀다. 상향식 공천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게 옳은 방향이다. 혁신위의 ‘서민경제 중심’도 현 정부의 친서민정책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혁신의 방향을 가늠키 어렵다.

홍준표 대표가 취임 44일 만에 민생투어에 나섰다. “연말까지 정부의 잘못들을 모아가며 기다리겠다”는 홍 대표에게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결기를 읽을 수 없다. 의원들의 파이팅이 사라진 지도 오래다. 패배주의와 무사안일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0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서 ‘TK(대구·경북)자민련’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2040’ 사이에서 한국당은 ‘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 옹호세력’으로 낙인 찍혀 있다. 억울해도 그게 현실이다. 이들은 보수라는 용어 자체를 싫어한다. 그도 그럴 것이 보수가 지난 20여년간 국민에게 큰 감동을 줬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헌신과 실천이 없어서다. 공감할 수 있는 보수로 거듭나지 않으면 ‘보릿고개를 넘은 박정희 전 대통령 향수에 빠진 수구세력’이라는 이미지를 깨긴 어렵다.

실천·헌신하는 신보수로 거듭나야

한국당의 보수 가치가 흔들린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자유주의에 입각한 자유시장경제와 법치주의, 작은 정부, 가족을 지키는 저녁이 있는 삶, 자유로운 경쟁 사회 등 보수의 본질을 놓친 지 오래다. 소외계층을 보듬는 노력도 부족했다. 이게 위기의 핵심이다. 재벌개혁에 초점을 맞춘 경제민주화와 ‘부자 증세’, 정부의 시장 개입 확대를 통한 큰 정부, 교육 평준화, 복지 확대, 공정한 경쟁 등 평등 논리를 앞세운 정책과 감성정치로 무장한 문재인 정부의 독주에 허둥대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한국당이 뒤늦게나마 정치학교를 세워 이념과 가치교육을 한다니 지켜볼 일이다. 진정한 가치 공유 없는 신(新)보수는 사상누각이다.

이재창 정치선임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