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 기자의 알쓸커잡] 호주의 '커피부심' 플랫화이트에 스타벅스도 백기

입력 2017-08-17 17:36
수정 2018-06-07 16:16
(6) 롱블랙, 숏블랙, 플랫화이트


[ 김보라 기자 ] 캥거루와 코알라, 청정 자연. 호주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들입니다. 이제 하나를 더 추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커피입니다.

요즘 잘나간다는 카페에 가면 잘 못 보던 메뉴가 눈에 띕니다. 롱블랙, 숏블랙, 플랫화이트. 카페라테와 카푸치노도 헷갈리는데 이건 또 무슨 외계어냐고요? 모두 호주에서 시작한 커피 메뉴입니다.

호주 커피는 스타벅스 때문에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75개국에 ‘커피 제국’을 세우고 있는 스타벅스가 2008년 호주 진출 8년 만에 전면 철수하면서입니다. 당시 손실액만 1억4300만호주달러(약 1300억원)에 달했지요. 승승장구하던 스타벅스를 무릎 꿇게 한 호주 커피의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1950년,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던 이탈리아 사람들은 새로운 기회의 땅을 찾아 이민을 떠납니다. 15만 명 이상의 이탈리아 이민자가 호주와 뉴질랜드에 정착하기 시작했죠. 이전까지 영국 지배를 받던 호주에 이탈리아인들이 에스프레소를 들고 등장했습니다. 신선한 원두를 볶고 커피를 내리는 모습에 호주 사람들은 열광했습니다. 멜버른에는 곧 로스팅회사와 이탈리안 에스프레소바 등이 생겨났습니다.

호주인들은 이탈리아 에스프레소를 호주 방식으로 변형시켰습니다. 라테보다 우유를 적게 넣고 에스프레소 샷은 더 넣은 플랫화이트,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섞은 롱블랙, 에스프레소 샷을 물 타지 않고 진하게 마시는 숏블랙 등이 등장했습니다. 호주나 뉴질랜드 카페에서는 주문량의 80%가 플랫화이트라고 하니, 이 정도면 ‘국민 커피’로 불릴 만합니다.

플랫화이트는 미국을 거쳐 유럽으로 확산됐습니다. 카푸치노와 비슷해 보이지만 계피 가루가 올라가지 않고, 우유가 적으면서 거품도 많지 않습니다. 진하고 고소한 맛이 특징이지요. 머그잔이 아니라 작은 유리잔에 나오는 것도 다릅니다. 플랫화이트 인기가 높아지자 2015년부터 스타벅스와 네로 등 글로벌 커피 체인점들도 메뉴에 이를 추가했습니다. 다만 (호주에서의 아픈 기억 때문인지) 이름을 ‘리스트레토 비안코’로 바꿔 부르고 있습니다.

플랫화이트가 유명해지면서 호주와 뉴질랜드는 ‘원조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호주인들은 ‘1950년대 이전까지 100도로 끓인 물에 인스턴트 커피 과립을 넣어 마무리로 우유를 살짝 얹어 먹던 게 플랫화이트의 시초’라고 주장합니다. 뉴질랜드인들은 ‘한 커피 트럭에서 카푸치노 거품 만들기가 귀찮아 적은 양의 우유에 에스프레소를 부어 만든 게 시작’이라고 합니다. 누가 원조든, 플랫화이트로 세계 커피 시장에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건 확실해 보입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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