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보고서 '금융이 분배 악화'
경쟁과 혁신으로 서민·중소기업 돕고
디지털화로 금융의 미래 바꿔야"
윤종원 < 주OECD 대사 >
금융화는 어떻게 부의 집중을 심화시켰나? 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금융에 던진 화두다. 1950년대 이후 금융부문이 빠르게 성장했고 생산, 고용 등 경제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OECD는 이런 금융화가 부의 집중을 심화시켰다며 그 이유로 금융부문 임금이 다른 업종보다 높고, 고소득자일수록 대출이 쉬우며, 금융자산 보유 집중도가 높고 고수익 투자수단을 제공하는 점을 들었다. 원인과 결과가 혼재된 방법론적 문제라든가 평가의 편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지만, 과도한 금융화가 금융 불안정을 야기하고 분배를 악화시켰다는 내용이 OECD 보고서에 담겼다.
금융을 바라보는 시각은 시대마다 달랐다. 금융을 성장의 핵심요소로 보면서 자유로운 금융시장 구축에 초점을 둔 것이 통상적 접근인데,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금융의 건강성과 포용성에 대한 각국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 과거 개발연대에는 실물경제 지원 역할이 강조됐지만 이후 과도한 규제를 풀고 금융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안점이 놓였다. 외환위기 이후 위험 관리와 금융소비자 보호도 부각되고 있다. 분배 측면의 고려는 이런 통상적 시각은 아니지만 금융화가 소득과 부의 집중을 심화시켰다면 그 함의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금융부문 고임금과 관련해 OECD는 금융 종사자의 임금이 비슷한 조건의 다른 업종 근로자보다 28% 높다는 분석결과를 제시했다. 생산성 차이보다 큰 임금 프리미엄은 진입규제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있다. 도덕적 해이와 시장실패 소지, 금융회사가 망할 때의 파장 등 때문에 금융은 진입장벽이 높고 경쟁이 제한돼 고임금이 존재하기 쉽다. 민간의 임금 결정에 정부가 개입하기 어렵고 고임금은 조세로 대응하는 게 원칙이겠지만 시장구조 결함에서 기인한 부분은 고쳐야 한다. 불합리한 규제를 풀고 카카오뱅크 사례처럼 경쟁을 촉발시키면 임금 프리미엄이 줄고 금융소비자 혜택도 커질 수 있다.
신용도가 높을수록 돈을 빌리기 쉬운 것이 금융의 생리이니 금융이 고소득자에게 유리하다는 주장은 딱히 틀린 건 아니다. 그러나 사업성 있는 신생 기업이나 상환의지가 강한 서민의 차입기회가 원천적으로 막혔다면 금융이 제 역할을 못한 것이다. 신용 인프라를 구축하고 대출심사 능력을 키우고 신용위험을 분산 흡수해서 필요한 곳으로 돈이 흐르게 하는 것이 금융의 책무다. 부실대출 책임이 금융회사에도 있는데 지나치게 채권자 위주인 금융 제도와 관행도 조심스럽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공급자보다 수요자 시각에서 금융을 바라보고 건전성 규제에 비해 미흡한 금융소비자 보호를 한층 강화해야 한다.
금융자산 집중도가 실물자산보다 높고 금융서비스가 부자들의 재산증식 도구가 됐다는 논지는 반향이 상당했던 토마 피케티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한다. 금융소득이 근로소득보다 부의 축적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해서 부자들의 금융 이용을 제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상품개발을 통해 일반 고객 대상의 금융서비스로 수익기반을 넓혀야 한다. 자산가격 상승에 따른 부의 집중 문제는 금융소득 과세 등으로 대응하는 것이 옳으며 필요 시 경제적 충격을 고려해서 접근해야 한다.
금융화로 인한 부의 집중에 대해 금융이 취할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다. 문제를 제기한 OECD도 금융적 대안보다 조세 등 일반 정책을 기술하고 있다.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일은 아니다. 경쟁과 혁신으로 서민과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금융서비스의 형평성을 개선해야 한다. 블록체인 등 디지털화로 금융 생태계가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금융이라는 그릇에 어떤 가치를 담을지 숙고해야 한다. 어떤 금융을 원하느냐에 따라 금융의 미래는 달라진다.
윤종원 < 주OECD 대사 jwyoon15@mofa.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