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 성장론'은 검증된 이론일까

입력 2017-08-11 20:43
수정 2017-08-12 07:46
이상은 기자의 Global insight

이론적 배경 ILO 보고서 살펴보니
모든 국가가 임금 1% 올려서 총수요 확대한다는 건 비현실적
한국 상황 제대로 반영됐나 의문


[ 이상은 기자 ]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비교적 생소한 개념인 ‘소득주도 성장’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주류 경제학자 중 상당수는 회의적이거나 유보적인 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성장이 고착화한 상황에서 임금은 도대체 오르지 않고 양극화가 진행되는데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있으라는 것이냐는 불만도 적지 않다.

소득주도 성장이 가능한 것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의는 물론 중요한 일이다. 주류 경제학이라고 항상 옳을 리는 없다. 다만 그것이 어떤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소득주도 성장 찬성론자들은 한국이 ‘임금주도형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분석 결과에 기대어 논지를 전개한다. 그 근거로 제시되는 것이 2012년 오즈럼 오네이런 영국 그리니치대 교수 등이 작성한 국제노동기구(ILO) 보고서에 포함된 주요 국가에 대한 실증분석 결과(표 참조)다. 이 표를 인용해 논지를 확장한 마크 라보이 캐나다 오타와대 교수 등이 쓴 2012년 ILO 보고서도 자주 거론된다.

얼핏 보기에는 복잡해 보이지만 이 표는 간단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각국에서 1%씩 자본소득 분배율(이윤 비율)이 늘어났을 때 그 나라의 민간 초과수요와 총수요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과거 데이터로 분석해 보면 주요 선진국과 한국 터키 등 많은 나라에서 음(-)의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한국에서 1% 자본소득 분배율이 올라간다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소비는 0.422% 감소하고 투자는 영향을 받지 않으며(0.000%) 순수출은 0.359% 늘어날 것으로 보고서는 추정했다. 수출이 좀 늘어도 소비 감소 효과가 더 커서 총수요가 0.115% 줄어들 것으로 봤다.

이 말은 거꾸로 생각해 보면 자본소득 분배율이 낮아질수록, 곧 기업이 이윤을 덜 가져가고 임금 등으로 풀수록 그 나라의 총수요가 증가하는 긍정적 효과가 발생한다는 얘기다. 한국이 임금주도형 경제체제라는 주장의 배경이다.

이 보고서는 이윤주도형 경제체제(자본이 더 많은 몫을 가져갈 경우 투자나 순수출이 증가해 총수요에 양(+)의 효과가 발생하는 나라)인 나라들로 중국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을 꼽았다.

라보이 등은 나아가 세계적으로 임금 비중이 1%포인트 떨어지면 주요 20개국(G20)의 총 국내총생산(GDP)이 0.36% 감소한다고 지적했다. 또 “세계경제에서 총 수요는 임금주도적”이라고 밝혔다. 캐나다와 멕시코 등 개별적으로는 이윤주도형 경제체제를 갖고 있는 나라들도 만약 모두가 임금을 줄인다면 순수출이 증가 효과를 보지 못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들은 ‘국제적으로 협의 조정된’ 임금주도 성장 전략이 가능하다고 했다. 모든나라가 동시에 임금을 올려준다면 세계 전체 총수요가 늘어나리라는 가정이다.

흥미로운 주제지만 현실 정책이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모든 나라가 동시에’ 임금을 올려주는 일은 오직 학술 논문의 가정에서만 가능하다. 국가 간, 기업 간 경쟁 체제에서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오네이런 등의 ‘실증분석’이 실제 한국의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지도 따져봐야 할 문제다. 오네이런의 2012년 보고서는 한국과 터키의 자료를 2005년 논문에서 재인용한 것으로, 상대적으로 고성장 국면의 한국을 반영하고 있다. 당시 한국이 수출 주도형 경제체제였다는 일반적 인식과 너무 어긋난다. 또 자영업자의 소득을 전체 경제에서 평균적 임금 수준을 따랐을 것이라고 추정한 대목도 데이터의 한계로 인한 현실과의 괴리 가능성을 시사한다.

임금 비중이 높아진다 해도 그 과실이 모든 구성원에게 동등하게 돌아갈 가능성은 낮다. 현실에선 대기업에 고용된 이들의 임금만 올라가고 정작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에 고용된 이들의 임금은 오르지 않을 개연성이 크다. 이런 문제들에 적절한 답을 내놓을 수 있을 만큼 소득주도 성장론이 풍부하게 진행돼 있는지 의문이다.

이상은 국제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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