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인간배아 연구 규제 완화해야 하나

입력 2017-08-11 19:03
인간 배아에서 유전성 난치병을 일으키는 돌연변이를 ‘유전자 가위’로 교정하는 실험이 성공했다.

지난 3일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 팀이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OHSU) 교수팀과 함께 인간 배아에서 비후성 심근증의 원인인 유전자 돌연변이를 교정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유전자 가위는 유전물질인 DNA에서 원하는 부위를 ‘가위’처럼 잘라 내고 붙이는 교정 기법이다.

배아 실험은 현지 규정에 따라 미국 연구진이 진행했다. 한국은 인간 배아를 이용한 연구를 금지하고 있어서다. 한국 연구진은 유전자 가위 제작, 교정 정확도를 분석하는 작업을 맡았기 때문에 국내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게 연구진의 주장이다.

한국의 생명윤리법은 배아·난자·정자·태아에 대한 유전자 교정 치료를 금지하고 있다. 대통령령이 정하는 희귀·난치병 치료 등 일부 조건을 만족할 경우에 한해 인공수정을 하고 남은 ‘잔여 배아’를 이용한 연구만 허용하고 있다.

이번 연구 성과로 과학계는 인간 배아 연구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기술이 실용화되면 자녀가 유전성 질환을 앓지 않도록 인공수정 단계에서 유전자를 교정할 수 있어서다. 국내법 때문에 해외에서 실험하게 되면 다른 나라에 원천기술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러나 수많은 인간 배아를 사용해야 하는 연구는 생명윤리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팽팽히 맞선다.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교정 기술이 지능, 키, 외모 등 원하는 형질을 가진 ‘맞춤형 아기’를 탄생시키는 데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윤리적 문제도 제기된다. 신기술의 위험성을 간과한 채 성급하게 규제를 풀기보다는 시민 참여를 통한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생명윤리법이 ‘사회적 합의’의 산물인 만큼 이해 당사자인 연구진과 과학계가 규제 완화를 주도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찬성

난치병·유전질환 치료 등에 필수…배아연구 규제 국가 한국·영국뿐
국내 금지로 외국서 연구…원천소유권 못가져

지난주 한국과 미국 과학자들이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한 인간 배아의 유전자 교정 연구결과를 발표해 학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인간 배아를 활용한 줄기세포 확립과 난치병 치료를 위한 세포치료기술 연구는 지난 10여 년 동안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다. 배아줄기세포는 세포 치료 외에도 미니 장기 생산, 동물을 대체하는 신약독성평가 신약탐색 연구, 질병의 발병기전연구 등 생명과학 연구에 없어서는 안될 재료가 됐다. 한국의 배아줄기세포 연구도 성과를 내고 있다. 지금까지 98개의 인간배아줄기세포가 만들어졌다. 황우석 박사가 실패한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를 확립했고, 줄기세포로 만든 망막세포를 이용해 실명증 환자를 치료하는 데도 성공했다.

문제는 과학적 진보 속도를 예측하지 못하고 성급히 제정된 생명윤리법이다. 2005년 제정된 이 법은 난치병이나 유전질환을 고칠 수 있는 세포유전자 치료 연구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법으로 인간생식세포와 배아 연구를 규제하는 나라는 영국과 한국뿐이다.

이번 인간 배아 유전자 교정 연구는 한국 과학자가 주도했지만 한국에서 연구하기 어려운 현실적 문제 때문에 미국에서 진행됐다. 혹자는 일본처럼 배아 사용을 대체하는 ‘역분화 기술’을 활용하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기술 역시 세포치료 연구를 포함한 많은 분야에서 아직 미완성 단계다.


인간 배아를 이용하는 연구는 궁극적으로 난치병, 유전병 같은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목적이다. 한국과 미국, 영국에서 공동으로 진행한 ‘실명증 세포치료제’ 연구는 종양 발생 등의 부작용 우려에도 불구하고 7년째 이렇다 할 부작용 없이 놀라운 치료 효과를 보였다. 이 때문에 미국, 일본, 유럽의 의약품 허가당국과 정부는 획기적인 제도 개선을 통해 세포 치료, 유전자 치료 등과 같은 신의료기술 분야는 ‘우선 심사-우선 승인’ 제도를 채택해 연구개발의 진입 장벽을 허물고 있다. 일본은 한국이 입법화에 실패해 폐기한 법률을 참고해 재생의료법을 만들어 세포치료제 개발의 선도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다. 역분화줄기세포 외에 배아줄기세포 연구도 동시에 지원하고 있다.

세계 각국은 획기적 제도 개선과 규제 완화를 통해 연구를 진흥하고 이를 통해 질병 극복과 신산업 창출을 도모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원초적 생명윤리 논란에만 갇혀 있는 상황이어서 과학자로서 안타까운 심정이다. 세계적 연구성과를 낸 우리 과학자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연구해야 하고 이로 인해 원천기술의 소유권을 외국에 귀속시키거나 공유해야 하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한국은 과거 엄청난 사건으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철저한 생명윤리 규범을 지키면서 연구를 진행하는 국가라고 생각한다. 매년 불임 치료를 위해 생산된 수만 개의 인간 배아와 생식세포가 생명윤리법에 따라 보존 기한을 경과하면 폐기물로 처리되고 있다. 의료 폐기물로 처리되는 인간 배아는 윤리적인 행위이고 폐기 예정인 배아를 기증받아 연구하는 행위는 생명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행위인지 되묻고 싶다.

연구를 위해 이용되더라도 인간 배아는 특별하다. 엄격한 윤리 기준에 맞게 다뤄지고 투명성과 공개성을 토대로 이용돼야 한다. 생명윤리법이 제정된 지 10여 년이 지난 만큼 그동안 노출된 문제점을 바로잡는 법률 개정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더 이상 우리 과학자들이 법률적 제약으로 인해 외국에 나가 연구하는 일이 없기를 희망한다.

반대

수많은 배아 사용 생명윤리 위반…시민 참여하는 공론화 과정 필요
해외에서 우회 실험한 것은 과학자 윤리 위배

최근 인간 배아에서 질병 유전자 교정에 대한 한국과 미국 연구팀의 공동 연구는 이전 연구에 비해 진일보한 성과를 제시하고 있다. 그동안 문제가 된 표적 이탈 효과와 모자이크 현상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비후성 심근증 돌연변이 유전자에 의한 심장병 발병을 막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한다. 그러나 실험 성공이 임상에 곧 사용할 수 있다는 기대나 이에 따른 규제 완화로 이어지는 것은 성급하다.

이 논문은 유전자 가위가 배아에서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를 밝힌 원리증명 실험에 가깝다. 그런데도 유전자 편집을 통한 질병 치료 시대가 도래한 것처럼 야단법석이다. 연구자들도 임상적 의미를 애써 강조한다.

캐나다 앨버타대 연구에 의하면 언론뿐 아니라 연구자들에 의해 연구의 함의에 대한 과장이 많이 이뤄진다고 한다. 중국 과학자들이 그동안 발표한 세 건의 논문과는 달리 이번 논문은 서론 부분의 거의 절반을 특정 질병인 비후성 심근증을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연구자가 인간 배아와 같은 민감한 재료를 사용해 자신의 연구를 추진하려는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배경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신기술의 과장 주기를 연구한 학자들은 네 단계로 신기술이 수용된다고 한다. 첫 번째 단계는 열광기다. 최초의 획기적인 기술 출현과 함께 시민들의 기대가 한껏 증폭된다. 기술의 이익은 강조되고 위험성은 축소된다. 두 번째 단계는 침체기다. 실제적인 증거가 쌓이면서 시민들이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단계다. 특히 부정적인 증거가 제시되면서 최초의 기대가 많이 사그라든다. 세 번째 단계는 회복기다. 긍정적인 증거도 쌓이고 원래의 기대보다는 못하지만 기술이 사회에서 수용되기 시작하는 단계다. 네 번째 단계는 안정기다. 규제가 완화되고 재정 지원이 이뤄져 기술이 안정적으로 발전하는 단계다.


인간 배아 편집에 대한 결과가 발표된 지 1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은 획기적인 연구 결과에 휘둘릴 수 있는 열광기다. 이때 서둘러 규제를 완화하면 잘못된 방향으로 규제를 완화하거나 자금이 왜곡 투자될 수 있다. 이번 연구처럼 연구자의 일부가 재정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을 때는 연구 함의의 과장 등에 더욱 유의해야 한다. 생명윤리법의 한계 내에서 시간을 두고 의미 있는 실험 결과가 쌓이는지 여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생명윤리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일부 실험이 미국에서 시행된 점도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국가 간 일관된 규제가 어렵다는 맹점을 이용해 현행법을 우회한 이번 실험은 연구자 주장대로 생명윤리법을 저촉하는 연구가 아니라고 해도 ‘아실로마 회의’ 이후 과학자의 책임 있는 자기 규제의 윤리를 정면으로 위배한 행위다. 과학자는 각국 법률에 나타난 다양성과 국제기구의 선언에 깃든 기본 정신을 존중하고 이를 개별 연구 행위에 반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번 실험을 바탕으로 연구자가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생명윤리법은 줄기세포 스캔들을 거치면서 어렵사리 만들어진 사회적 합의물이다. 인간 배아에 유전자 가위 기술을 적용하려면 수많은 배아가 사용돼야 하기 때문에 엄격한 사회적 합의 과정의 룰을 지켜야 한다. 소수의 학자나 전문가 위주의 논의를 넘어 시민 참여를 통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 시민들이 이런 과정을 통해 유전자 편집 기술의 다양한 의미를 학습하고, 의견을 취합한다면 의사결정의 정당성과 투명성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연구의 정당성도 확보할 수 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