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 홍련' 염정아, 14년만 스릴러 복귀
"'장산범', 스릴러+모성애 결합한 영화라 좋아"
"'라라랜드' 보며 욕심, 연기 오래하고 싶죠"
'장화, 홍련'(2003)은 배우 염정아라는 이름을 아로새기는 계기를 만든 영화다. 그 후 14년 동안 염정아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열어놓고 있었는데, 하고 싶은 작품을 못 만났었어요." 오는 17일 개봉하는 영화 '장산범'은 그에게 단비와 같았다.
'장산범'은 지난 2013년 개봉해 560만 관객을 들인 '숨바꼭질'의 허정 감독이 연출을 맡고 염정아, 박혁권, 신린아 등이 출연했다. 목소리를 흉내 내 사람을 홀린다는 장산범 괴담을 스크린에 옮겨 인간의 심리적 불안감을 통해 압도적인 긴장감을 자아내면서 기존 스릴러 장르와 결을 달리했다.
염정아는 이 영화에서 도시를 떠나 장산에 내려가 살게 된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 희연 역을 연기했다. 희연은 5년 전 어린 아들 준서를 잃어버리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황에서 우연히 숲속을 헤매는 한 소녀(신린아)를 만난다. 딸과 같은 이름의 이 소녀를 집에 들인 이후 가족들은 미스터리한 소리를 듣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실제로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는 염정아는 '장산범'을 통해 모성애 연기를 절절하게 표현했다. 아니 스스로를 캐릭터에 연소시켰다고 봐도 무방했다.
지난 9일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난 염정아는 "현실에서도 엄마라서 희연의 감정이 뭔지 아니까, 공감하기에 연기 할 수 있었고 그것 때문에 이 영화가 끌렸다"고 말했다.
영화는 사람의 기억과 감정을 건드리는 '소리'와 염정아가 연기한 희연의 감정에 주목했다. "놀라게 하기만 하는 공포 영화가 아니라 반반이었어요. 조화를 잘 맞추면 독특한 영화가 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책(시나리오)을 읽으면서 많이 울기도 했고요."
찌르면 시나리오에 있는 연기가 툭 하고 나올 것만 같은데 염정아는 스스로 계산적이지 못하다고 토로했다. "그래서 책을 여러 번 읽어요. 신을 찍을 때 몰입이 덜 된 경우 책을 처음부터 다시 보고선 감정의 크기를 생각하고 연기합니다. 관객이 희연의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게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하며 연기하는 것이 힘들었죠."
염정아는 캐릭터를 연기했다기보다 희연 그 자체가 됐다. "사실 실제 제 모습에는 대입하지 않아요. 현장으로 가면 되게 빨리 적응하는데 집에 오면 빠져나오는데 시간이 걸리죠. 잔재들이 조금 남아있더라고요."
허정 감독은 촬영할 때 초시계를 재며 촬영하는 꼼꼼한 스타일로 유명하다. 염정아 또한 허 감독의 이런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이번에도 초시계로 분, 초 단위까지 맞추시며 촬영하셨죠. 현장 분위기는 참 진지했어요. 감독님은 워낙 말수도 없고 수줍어하는 스타일이시거든요. 하지만 원하는 건 다 얻어가세요. 나올 때까지 찍더라고요."
극 중 염정아는 8살 신린아와 이질적인 하모니를 이룬다. 신린아는 나이가 무색하도록 무섭고 서글픈 느낌을 영화 끝까지 끌고 간다. 염정아는 캐스팅 당시 사무실에서 신린아를 보는 순간 느꼈다. "캐스팅 너무 잘하셨다."
"(연기적으로) 봐줬냐고요? 전혀요. 봐줄 게 없었어요. 쉬는 시간에는 아기처럼 놀아요. 그런데 카메라 앞에만 딱 서면 성인 연기자처럼 연기하죠. 주문하면 주문하는 데로 바로 표현하고, 타고난 게 있는 아이라고 생각해요. 어리다고 배려해야 할 것들이 없었어요."
'무당' 역할의 배우 이준혁은 전작 '구르미 그린 달빛'이나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오싹한 얼굴을 드러냈다. "이준혁은 마임, 동물연기를 잘 하기로 유명하죠. 몸을 너무 잘 쓰시더라고요. 분장시간이 되게 오래 걸렸는데 진득한 액체를 온몸에 바르고 있어서 앉아서 얘기하기도 불편했죠."
남편 민호 역의 박혁권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그다지 친밀하지 못했다고 했다. "감정적으로 힘든 신을 묶어서 하다 보니 사적인 이야기는 많이 하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홍보하면서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이에요. 말씀이 많은 것은 아닌데 되게 재밌는 배우죠."
오랜만의 스크린 복귀에 영화 홍보도 앞장섰다. 그는 지난 8일 방송된 JTBC '비정상회담', '한끼줍쇼', 방영 예정인 SBS '박진영의 파티피플' 등을 통해서다.
"아이들이 TV에 나오는 제 모습을 보고 엄마가 배우라는걸 실감하나 봐요. '아는형님'은 왜 안나가냐고 하더라고요. '한 끼 줍쇼'는 꼭 해보고 싶었던 예능이에요. 무지 더운날 촬영을 했는데 재밌었어요. 낯설지만 색다른 경험이었죠."
배우라는 스위치를 끄면 염정아는 '엄마'로 돌아온다. 그는 '뭐든 열심히 하는 엄마'라고 자신했다. "유치원 때는 엄마들 모임에도 자주 나갔어요. 초등학교 입학하니 그런 건 좀 없어지고 생일파티 같이하고 그래요. 쉴 때는 아이들 상담도 다니고, 마트도 매일 가요. 남편과 술 한잔하는 게 삶의 해방구죠."
1991년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으로 데뷔한 염정아는 올해로 26년 차 중견 배우다. 시간이 지나다보니 여배우로서 할 수 있는 캐릭터는 한정적이라는 아쉬움이 생겼다.
"'라라랜드'를 너무 재밌게 봤어요. 어렸을 때 저런 역할을 했다면 행복했겠다 싶었죠. 지금은 '맘마미아' 쪽으로 가야 하고요. 카메라, 조명을 믿기 때문에 춤도 자신 있어요. 배우는 시나리오 들어오는 것 내에서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은 있죠. 여성 영화가 줄고 있는 것도 그렇고요. 상황이 조금 더 좋아지길 바라요. 연기, 오래 하고 싶거든요."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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