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희 교수 등 국제공동연구진
중성미자, 우주 탄생 입자지만 질량 거의 없고 물질과 반응 안해
이론 발표 43년 만에 밝혀내
[ 박근태 기자 ]
한국 과학자를 포함한 국제 공동 연구진이 토스터 크기의 작은 검출장치를 이용해 유령입자로 불리는 중성미자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유종희 KAIST 물리학과 교수(IBS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 그룹리더)를 포함해 미국과 캐나다, 러시아 등 4개국 18개 대학과 기관 소속 과학자 90명이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진은 파동 성질을 가진 중성미자가 원자핵을 미세하게 흔드는 ‘결맞음 상호작용’ 현상을 처음으로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3일자에 발표했다. 중성미자는 물론 암흑물질에도 적용되는 이 현상은 페르미연구소 과학자들이 1974년 처음 이론적으로 예언했지만 실제 검출 실험을 통해 확인된 건 43년 만이다.
중성미자는 원자핵이 붕괴하거나 핵끼리 융합하는 과정에서 방출되는 작은 입자다. 먼 우주에서 날아오기도 하고 태양 중심부에서도 발생한다. 우주 탄생 당시 있었던 기본 입자 중 하나지만 질량이 거의 없고 다른 물질과 반응하지 않아 오랫동안 실체를 알 수 없었다. 지구에서도 중성미자가 원자핵이 급격히 분열하는 핵실험 과정에서 발생하지만 에너지가 낮아 측정이 불가능했다. 과학자들은 중성미자의 그런 특성 때문에 ‘유령입자’라는 별명을 붙였다.
지금까지 중성미자 연구는 주로 대규모 검출 장치에서 해왔다. 중성미자 연구로 2002년과 2015년 노벨물리학상을 각각 받은 고시바 마사토시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와 그의 제자인 가지타 다카아키 도쿄대 교수는 가미오칸데와 슈퍼 가미오칸데라는 거대 중성미자 검출시설을 사용했다. 일본 기후현 히다시 가미오카 폐광에 지은 중성미자 연구장치인 슈퍼 가미오칸데는 높이 15m, 넓이 300㎡ 공간에 설치된 물탱크에 우주에서 쏟아지는 중성미자가 남긴 흔적을 찾는 광센서 6000개가 촘촘하게 박혀 있다.
이번에 연구진은 이보다 훨씬 작은 검출기를 활용했다. 이 검출장치는 토스터 크기에 무게가 14.5㎏밖에 나가지 않는다. 중성미자는 일반적으로 에너지가 높을 때는 입자 성질을 띠지만 에너지가 내려가면 파동처럼 진동하는 성질을 갖는다. 파장이 커지면서 비슷한 크기의 원자핵과 부딪히면 진동이 크게 증폭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른바 결맞음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중성미자가 원자핵을 밀어내는 정도는 탁구공으로 볼링공을 쳤을 때 볼링공이 흔들리는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정도의 움직임을 포착하려면 정교한 검출기가 필요하다.
연구진은 순도가 높은 요오드화 세슘 원자들을 검출기로 썼다. 미국립오크리지연구소에 지은 파쇄중성자원에서 20m 떨어진 위치에 검출기를 설치하고 원자핵이 붕괴할 때 나오는 소량의 중성미자를 부딪히게 했다. 이때 중성미자가 밀어낸 세슘과 요오드 양성자가 수은 표적을 때리는 순간을 포착해 결맞음 상호작용을 간접적으로 관측했다.
중성미자는 우주의 모습과 질량의 근원을 설명하는 중요한 입자다. 우주에서 초신성이 폭발하거나 별이 탄생하는 과정을 설명할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다. 우주 질량의 85%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직 검출되지 않은 암흑물질을 규명하는 데도 활용될 전망이다. 유 교수는 “중성미자는 지하에서 핵실험을 하는 과정에서도 사방으로 날아갈 수 있다”며 “미 국방부를 중심으로 중성미자를 활용해 핵실험을 탐지하는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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