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4차 산업혁명 빚는 건 인문학 자산이다

입력 2017-08-04 18:11
"인문·기술 융합이 중요해진 시대
'인간 중심' 미래 열 인문역량 다져야"

김영민 < 동국대 문과대학장·사립대인문대학장협의회 회장 >


얼마 전 미국 전기자동차 업체인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컴퓨터가 사람을 능가하지 못하도록 인공지능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해 화제가 됐다. 그는 “인공지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인류가 미래로 나아가는 데 큰 위험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굳이 머스크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공지능, 로봇, 빅데이터, 자율주행자동차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불리는 기술을 인간의 본질을 다루는 인문학적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인류의 미래를 연구하는 비밀 조직인 ‘구글 X’도 엔지니어와 역사, 철학 등을 전공한 인문학자가 함께 근무하면서 인문·기술 융합형 연구를 수행하며 이런 사회적 이슈에 대비하고 있다.

이처럼 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함께 주목받고 있는 인공지능과 로봇,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 등 기술의 발전과 진화에는 반드시 인문학적 가치가 포함된 법적 장치와 윤리규정이 포함돼야 한다. 그런데 인문·기술 융합이라는 세계적 추세와 달리 한국은 지나치게 이공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어 우려스럽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인문학 분야의 균형적 발전이 필요한데도 한국은 인문학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위축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오히려 인문학의 위축을 가속화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 우리 사회의 현실을 세 가지만 짚어보자. 첫째, 대학 구조조정의 본격화다. 대학구조개혁으로 취업에 불리한 인문학 관련 학과가 폐지·축소되고 있고, 대학가에서는 기초학문의 기반이 와해되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둘째,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에서 인문사회연구 분야 지원의 축소다. 정부 R&D 예산은 2014년도 17조8000억원, 2015년도 18조9000억원, 2016년도 19조원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2016년도 인문사회연구 지원은 2990억원으로 전체 R&D 예산의 1.6%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계속 삭감될 것으로 보인다. 셋째, 민간기업들의 인문학에 대한 투자와 관심 부족이다. 민간기업의 R&D는 곧 과학기술 R&D라는 인식이 강하게 굳어져 있어 인문 R&D는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급변하는 세계화와 디지털화 속에서 인간이 서야 할 위치, 가야 할 방향을 살펴온 인문학 연구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지원 확대는 필수적이다. 특히 인문학 연구의 중심에 있는 국내 대학 연구소와 인문학 분야 학문 후속세대 양성을 위한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 이는 거의 유일하게 우리나라 인문학연구 지원을 맡고 있는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학 지원 예산이 대폭 증액돼야 한다는 의미다.

전 세계에 4차 산업혁명 바람을 몰고 온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WEF) 회장도 새로운 문화 르네상스, 즉 ‘인간 중심의 미래’를 만들기 위한 인문학적 역량을 강조하고 있다. 그 이유는 과학과 기술 모두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하며 그 방향성은 인문학이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4차 산업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핵심 과학기술 아래에 숨어 보이지 않는 인문학적 자산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김영민 < 동국대 문과대학장·사립대인문대학장협의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