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 신촌세브란스병원 교수
호르몬 억제제 복용자 관찰
10년간 31%가 지방간 발병
[ 임락근 기자 ]
폐경 이후 유방암 수술을 받은 환자가 재발을 막기 위해 복용하는 호르몬 억제제가 지방간 발생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유방암 재발을 예방할 수는 있지만 지방간 등 다른 대사적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유미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사진) 연구팀은 2006~2015년 병원을 찾아 유방암 수술을 받은 뒤 호르몬 억제제 복용을 시작한 환자 328명을 관찰했다. 그 결과 31%인 103명에게서 지방간이 발병했다고 4일 밝혔다. 이 중 타목시펜을 복용한 환자가 아로마테이즈 억제제를 복용한 환자에 비해 지방간 발생 위험도가 61%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타목시펜과 아로마테이즈 억제제는 모두 유방암 재발과 연관이 있는 에스트로겐 분비를 억제하는 호르몬 약이다.
연구대상 328명은 타목시펜 복용군과 아로마테이즈 억제제 복용군 각각 164명으로 구성됐다. 이들 중 94%인 307명이 병기 2기 이하인 조기 유방암 환자였다. 모두가 지방간을 포함해 간질환에 관한 과거력이 없고, 하나의 호르몬 억제제만 꾸준히 복용했다. 평균 연령은 53.5세, 체질량지수(BMI)는 22.9였다.
연구팀은 이들이 호르몬 억제제 복용을 시작한 날을 기준으로 종양 관련 정보, 약제 정보, 복부초음파검사와 혈액검사 결과 등을 면밀히 검토했다. 지방간 발생 여부를 측정하기 위해 1~2년 간격으로 복부초음파 결과와 간효소 수치 변화를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지방간 발생 위험은 연구대상의 관찰기간이 서로 다를 때 사용하는 인년법(人年法)으로 분석했다. 사람 수와 관찰기간을 곱한 값을 분모로 한다. 분석 결과 연구대상자들의 관찰기간을 총합한 987.4인년 동안 모두 103건의 새로운 지방간 발생건수가 보고됐다. 타목시펜 복용군과 아로마테이즈 억제제 복용군에서 각각 62명, 41명이 발병했다.
연구팀은 여기에 비만도, 혈중 중성지방수치 등 대사적 위험요인을 통계학적으로 보정한 결과 타목시펜 복용군이 아로마테이즈 억제제 복용군에 비해 지방간 발생 위험도가 61% 높았다고 결론지었다.
연구팀은 호르몬 억제제 복용이 여성호르몬 기능을 억제하거나 농도를 낮춰 건강한 대사활동에 필요한 호르몬들의 불균형을 가져왔다고 봤다. 때문에 지방간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측했다. 타목시펜은 기존에도 간에 손상을 줄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지방간 발생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이 교수는 “그동안 유방암 환자에게 호르몬 억제요법을 장기간 시행했을 때 발생 가능한 대사적 합병증 관리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며 “폐경 이후 유방암이 발병한 환자들에게 타목시펜을 사용하면 아로마테이즈 억제제 사용에 비해 상대적으로 간효소 수치가 많이 상승해 지방간 발생 위험도가 높아진다는 것을 밝힌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조호르몬 요법을 선택하는 환자는 비만도, 중성지방과 고밀도콜레스테롤 등 여러 대사적 위험인자와 함께 타목시펜과 아로마테이즈 억제제가 보유한 지방간 발생 위험도를 고려해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유럽암저널 최근호에 게재됐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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