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서울대생 이두희가 만든 '강의평가 사이트'
"콘텐츠 사유화한다" 학생들 반발에 끝내 종료
[ 황정환 기자 ]
강의평만 13만4294개에 달하는 국내 최대 대학강의평가 사이트 ‘파피루스’가 오는 9월10일자로 서비스를 종료한다. 2008년 서비스를 시작한 지 약 9년 만의 일이다. 이 사이트는 서울대의 천재 해커로 꼽혔던 이두희 씨(34·멋쟁이사자처럼 대표)가 만들었다. 이씨는 지난 2일 페이스북에 “1만6000명의 유저 데이터와 13만 강의평가는 9월10일에 일괄 삭제될 예정”이라는 서비스 종료 메시지를 올렸다.
서울대 커뮤니티에선 난리가 났다. “데이터를 학교 측에 양도하는 게 어떠냐”는 설득부터 “학생들이 만든 콘텐츠를 당신 마음대로 해도 되냐”는 비난까지 의견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씨는 단호하다. 멕시코를 여행 중인 이씨는 “내가 왜 사이트를 계속 운영해야 하는지 이유를 찾지 못했다”며 “1억원 사비를 들여가며 운영했지만 남은 건 ‘돈만 밝히는 사기꾼’이라는 오명뿐이었다”고 털어놨다. 무엇 때문에 그는 자신이 10년에 걸쳐 이룬 작품을 자기 손으로 없애는 결정을 내리게 됐을까. 비영리 목적으로 출발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대한 고질적인 편견이 배경이란 분석이 나온다.
선의로 사이트 만들었지만…
파피루스는 2008년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석사과정에 다니던 이씨가 개발한 강의평가 사이트 스누이브(SNUEV)로 출발했다. 그는 2006년 서울대 전산시스템의 보안 문제를 제기한 뒤 고쳐지지 않자, 경고 차원에서 3만 명의 개인정보를 해킹했다. 그 중 한 명인 연예인 김태희 씨 사진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이후 ‘서울대 천재 해커’라는 이름을 얻었다.
“100만원짜리 노트북 하나를 사도 20~30개 리뷰를 읽어보는데 400만~500만원 수업료를 내면서 수업이 어떤 내용인지, 들어본 사람들의 후기는 어떤지 등을 모른 채 수강신청하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는 게 이씨가 사이트를 연 이유다.
수강편람을 조회하고 강의평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스누이브는 서울대생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년도 안 돼 스누이브는 서울대생의 필수 사이트가 됐다. 이씨는 서울대생들의 ‘영웅’이 됐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고 했던가. 선망의 대상이던 이씨였지만 2016년 초부터는 학생들에게 ‘도둑’으로 몰렸다. 스누이브가 영리법인 ‘파피루스’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모든 강의평에 대한 권리가 이씨 개인에게 넘어간다는 소문이 퍼지면서다.
이씨는 바로 해명에 나섰다. 약관에는 강의평 등 콘텐츠 저작권이 사용자에게 있다고 명시했다. 파피루스는 콘텐츠에 대한 독점적 이용권과 2차 저작권에 대한 사용권만 가졌다. 이는 정보기술(IT)업계에선 표준처럼 통용되는 방식이다. 배달의민족이나 포잉 등 다른 서비스 스타트업들의 약관과 차이가 없다. 이씨는 “사용자의 저작권을 제3자가 무단 도용하는 걸 막기 위한 것”이라는 해명도 내놨다.
하지만 “학생들이 만든 콘텐츠의 저작권을 도둑질했다”는 비난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무렵부터 내가 왜 사비를 털어 서비스를 운영해야 하는지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이씨가 9월10일 서비스 종료를 결정한 배경이다.
척박한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개선돼야
외국에도 파피루스와 같은 대학강의평가 사이트가 꽤 있다. 대부분 파피루스처럼 비영리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사업 지속을 위해 이후 영리기업으로 전환했다. 1999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존 스왑세인스키가 설립한 ‘레이트 마이 프로페서(RATE MY PROFESSOR:내 교수를 평가해주세요)’가 대표적이다. 8000개가 넘는 대학의 강의평가 정보 1500만 건 이상을 보유한 이 사이트는 2007년 글로벌 미디어기업인 비아콤에 인수됐다.
파피루스의 서비스 종료는 척박한 국내 스타트업 비즈니스 생태계와 콘텐츠의 가치를 경시하는 문화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콘텐츠나 서비스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지속가능성을 위한 창업가의 선택을 이해하는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임정민 구글캠퍼스 센터장은 “일반인은 물론이고 벤처캐피털(VC) 등 투자자들까지도 창업자에 대한 보상에 인색한 게 국내 창업 현장의 현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비영리 목적으로 출발한 서비스라고 해도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영리성은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하고 창업자의 성공을 축하해주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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