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재정건전성이 위협받고 있다

입력 2017-08-01 18:28
정치·사회 이슈 따라 널뛰기하는 재정지출
2033년부터 나라살림이 파산에 이를 수도
미래세대 짐지우기 전 안전장치 마련해야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


최근 기분 좋은 소식을 하나 들었다. 세계 최대 규모 여행정보 사이트 ‘트립 어드바이저(Trip Advisor)’가 ‘세계 국가에서 관광객이 해야 할 단 한 가지’를 소개하며 한국에 가면 서울 지하철을 꼭 타야 한다고 했단다. 지린내 나는 파리의 지하철이나 악취가 나고 팔뚝만 한 쥐가 돌아다니는 뉴욕의 지하철을 타본 필자로선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가격도 저렴하고 버스와의 편리한 환승 및 요금 정산시스템 등 서울 지하철은 해외에서도 한국인임을 뿌듯하게 해주는 자랑거리임에 틀림없다.

얼마 전 세계 여행 및 호텔 예약업체인 호텔스닷컴이 공개한 ‘최악의 해외관광객 국가 6’에 한국이 없었다는 보도도 마찬가지다. 한때 ‘어글리 코리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인이 세계 여행업계의 평판에서 요주의 대상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다. 그동안 유명 관광지에서 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성을 일삼고 화장실에서도 새치기하는 한국인을 보고 얼굴이 붉어졌던 때가 많았는데 말이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면서 나아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달 19일 발표된 새 정부의 국정 청사진을 담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비전처럼 한국은 분명히 더 나아지고 있다. 다만 국정운영의 설계도이자 나침판이라는 이 계획 실현에 들어갈 5년간 178조원의 재원 마련 방안은 현실성이 없다는 게 걱정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사실상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빗발쳤고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여당대표의 작심발언 이후 ‘부자 증세’로 논의가 옮겨갔다. 이제 언론은 복지재원 마련에 대한 관심보다 ‘증세’, 그것도 ‘핀셋 증세’로 논쟁의 불을 지피고 있다.

돌이켜보면 재정 관련 통계를 제대로 관리하기 시작한 지난 45년간 관리대상 재정수지가 흑자를 보인 기간은 1987년, 1988년, 2002년, 2003년 2007년 등 5년뿐이다. 이마저 지출 억제보다 예상치 않은 수입 확대에 기인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4년간 추경을 세 번이나 했다. 이번 새 정부의 추경도 대통령은 ‘일자리 추경’이라고 했지만 논의과정에서 ‘일자리·민생 추경’으로 바꿨고 결국 나눠 먹기 예산이 되고 말았다. 정부와 정치권의 재정지출 욕구는 그만큼 막기 어렵다는 얘기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경제 위기가 재정 위기로까지 이어졌던 유럽연합(EU)은 최근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재정준칙을 포함한 바람직한 재정구조를 제시하고 있다. 한국도 이제는 과거와 달리 구조적, 의무적 지출이 늘어나고 있어 재정건전화를 강제할 법이 필요하다는 연구와 논의가 꾸준히 있어왔다. 특히 한국과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는 재정지출 확대에 따른 구축효과가 더욱 클 것이며 미래세대에 부담을 지워 갈등을 더 키우게 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작년 10월 정부가 어렵게 재정건전화법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현행 복지제도만 유지해도 2060년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적게는 62.4%(2015년 12월 행정부)에서 많게는 151.8%(2016년 8월 국회예산정책처)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의무지출 조정이 안 되고 구조개혁까지 지지부진해 잠재성장률을 갉아먹을 경우 최대 157.9%까지 늘어난다는 점까지 강조하고 싶지는 않다. 나아가 국회예산정책처의 보고서는 2033년부터는 국채로도 지출을 감당하지 못해 국가재정이 파산에 이를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그런데도 정치권에선 재정건전화법이 복지지출을 억제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해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저출산·고령화 대응, 양극화 해소, 4차 산업혁명 대비 등 경제·사회구조 혁신에 필요한 분야는 적극적으로 재정으로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상황이나 사회 이슈에 따라 재정 지출이 널뛰기하는 현상이 되풀이돼 국민의식은 나아지고 있는데 예산·재정 관리 시스템은 후진적이라는 지적이 나와선 안 된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된 지난해부터 향후 10년간은 8대 사회보험의 수입·지출 전반에 중대한 변화가 나타나는 시기다. 중장기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선제적 대처와 재정안정화를 위해 재정건전화법은 꼭 다시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