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재영 서울 포시즌스 총주방장과 동해 피문어
[ 이수빈 기자 ]
화려한 호텔 레스토랑 뒤쪽에 주방이 있다. 점심·저녁 식사시간이 되면 그 어느 곳보다 치열해진다. 재료를 자르고, 볶고, 튀기느라 분주한 셰프들은 한겨울에도 땀을 흘린다. 파인 다이닝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미식(美食) 문화가 발전하게 된 중심에는 호텔 셰프들이 있다. 뷔페, 브런치, 호텔 빙수, 애프터눈 티, 스시, 모던한식 모두 호텔 셰프들이 처음으로 알린 식문화다. 이들은 세계를 다니며 새로운 식문화를 탐구하고, 끊임없이 메뉴를 개발하면서 미식을 알려 왔다. 사람들이 호텔 레스토랑에서 최상의 음식을 맛보길 기대하는 이유다. ‘대한민국 호텔 셰프 열전’에서 한국 대표 호텔 셰프들의 이야기와 가장 자신 있는 요리 한 가지씩을 소개한다.
요리는 손맛이라고들 한다. 이재영 서울 포시즌스 셰프(사진)의 손은 무쇠 솥뚜껑처럼 두꺼웠다. 손톱은 바짝 깎아 반절밖에 안 남았다. 지난 1일 세계적인 호텔체인 포시즌스에서 한국인으로는 첫 총주방장이 된 이 셰프는 말씨도 투박하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 그는 “요리사가 된 건 순전히 이 손 덕분”이라고 했다.
경북 경주에서 나고 자란 이 셰프는 군에 입대해 얼떨결에 조리병이 되면서 요리와 처음 연을 쌓았다. ‘솥뚜껑 손’은 조리병 일에 딱이었다. 그는 “무거운 식자재를 척척 나르고, 김치찌개 200인 분을 끓일 때도 바가지로 소금을 푹 퍼서 간을 기가 막히게 맞췄다”며 “적성을 찾았다고 생각해 군에서 한식과 일식 조리자격증을 땄다”고 했다.
서울 리츠칼튼호텔 일식당에 인턴으로 들어갔을 때도 두꺼운 손 덕을 봤다. 당시 리츠칼튼에는 이 셰프 말고도 해외 유명 요리학교 출신 학생 60명가량이 인턴으로 와 있었다. 이 셰프는 “경주 촌놈이라고 해서 유학파 사이에서 기죽을 순 없었다”며 “매일 자진해서 데판야키 철판을 닦고, 식재료를 정리했다”고 말했다. 손이 다부져 철판에 눌어붙은 그을음을 닦기에 유리했다. 그는 “선배 셰프들이 ‘이 녀석 철판을 잘 닦네’라며 이것저것 일을 시키기 시작했다”며 “간장을 가져오라고 하면 5초 안에 갖다줄 정도로 재빨랐다”고 말했다. 결국 정직원으로 전환되면서 리츠칼튼에서 처음 커리어를 시작했다.
2005년 서울 파크하얏트로 옮긴 뒤엔 업계에서 처음으로 브런치 메뉴를 내놨다. 2~3명이 나눠 먹을 수 있는 미트 플레이트 등의 메뉴를 개발했다. 이 셰프는 “강남에 사는 주부들이 특히 열광했다”며 “‘엄브(엄마들의 브런치)’ 문화가 생겨난 것도 그때부터였다”고 했다. 2007년에는 호텔 최초로 팥빙수를 출시하기도 했다. 두 달 동안 연구해 팥 앙금 비율을 맞췄다. 이후 부산 파크하얏트를 거쳐 2015년 서울 포시즌스에 부총주방장으로 합류했다. 현대적으로 플레이팅한 한식메뉴를 개발해 1층 카페 ‘마루’에 내놨다. 이 셰프는 “개방된 카페에서 깔끔한 한식을 맛볼 수 있어 외국인들이 특히 좋아했다”며 “플레이팅은 파인다이닝처럼 세련되게, 맛은 깊이 있게 내는 게 마루 한식의 특징”이라고 했다.
재료를 육수에서 장시간 뭉근히 익히는 ‘브레이징’ 요리가 이 셰프의 특기다. 그는 마루에서 선보인 동해 피문어 요리를 보여줬다. 동해에서 새벽에 공수해온 피문어를 해물육수에서 6시간 동안 브레이징한 뒤 썰어 낸 음식이다. 그 위에 캐비어, 연어 알 등으로 장식하고, 간장 소스는 젤리로 굳혀 올린다. 오랜 시간 문어를 브레이징하면서 섬유질 사이사이에 해물육수가 촉촉히 베어든다. 입에 넣으면 보드라운 문어살에서 진한 감칠맛이 난다. 그는 “질기고 보잘것없는 재료도 본연의 맛이 깊이 우러나와 일품요리로 다시 태어나는 게 브레이징의 묘미”라며 “끈기 있고 우직한 내 성격과 닮았다”고 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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