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초대기업·초고소득자 증세' 필요한가

입력 2017-07-28 18:53
문재인 정부가 ‘초(超)대기업·초고소득자’ 증세를 추진하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0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과세표준 2000억원 초과 대기업의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늘리고, 5억원 초과 구간 소득세율도 40%에서 42%로 높이자”고 제안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다음날 곧바로 기획재정부에 증세안 마련을 지시했다. 기재부는 다음달 2일 세법 개정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런 움직임은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지난 19일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할 때만 해도 예상치 못한 것이다. 국정기획위는 당초 법인세율 인상 등 사회적 논란이 큰 세제 개편은 조세·재정개혁특별위원회 논의를 거쳐 내년 이후 증세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지난달 취임 이후 “소득세나 법인세 세율 인상 계획은 없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임기 5년간 국정과제 이행에 필요한 178조원을 증세 없이 마련하겠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갑자기 청와대와 여당을 중심으로 증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늘어날 재정 수요를 감안하면 증세는 불가피하다고 본다. 법인과 개인에 대한 소득세율이 국제적으로 낮아 인상 여력이 충분하다는 점이 증세를 뒷받침하는 근거다. 초고소득층이나 초대기업에 대한 증세를 먼저 시작해야 향후 ‘보편증세’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넓힐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아예 이번 기회에 임대소득과 주식양도차익 등 자산소득 과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반면 주요국들이 경제 활성화를 위해 앞다퉈 법인세를 인하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만 법인세를 올리는 것은 국가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반론도 있다. 기업 투자와 일자리 창출 능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다. 고소득층만을 대상으로 한 소득세율 인상은 근로자의 46.5%(2015년 기준)가 세금을 한 푼도 안 내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조세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있다.

찬성
낮은 법인세율, 개인사업자 비해 특혜…주식양도 차익도 제대로 과세해야
초대기업·초고소득자 증세, 과세 정상화 출발점

문재인 정부는 임기 초반에 소득상위 계층과 대기업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려고 한다. 여론도 대체로 이를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향이 아직 확정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정부와 여당 내부에서도 견해 차이가 있다. 조세부담을 계층 간에 나누는 문제는 사회 구성에 관한 본질적인 영역에 속한다. 그래서 합의 도출은 어려운 일이다. 미봉책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오래 유지될 수 있고 공정한 조세체계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증세에 대해 ‘부자증세’ ‘표적과세’ 등으로 평가절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부자에 대한 증세가 목적이 아니라 우리나라 조세체계 내에 존재하는 특혜적인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조세체계를 공정하고 정의롭게 만들어 가자는 취지에서 이해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법인소득과 자산소득에 대한 낮은 세율이 이런 특혜적 요소들에 해당한다. 이들을 제거하려니 부자들에 대한 증세가 결과적으로 이뤄진 것일 뿐이다.

현재 법인사업자(과표 2000억원 초과 대기업)에 적용되는 22% 세율은 개인사업자들에게 적용되는 최고세율(40%)에 비하면 커다란 특혜다. 소득 2억원 이하 중소법인에는 이보다 더 낮은 10% 세율이 적용된다. 법인세를 납부한 뒤 법인 소득은 주주에게 경제적으로 귀속된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사람들인가?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12년 한국에서 지급되는 배당소득의 72.1%가 상위 1% 계층에 집중되고 있다. 배당 시점에 주주들에게 소득세가 다시 과세되기는 하나 대주주가 법인의 이익을 배당하지 않고 기업에 유보하기로 결정하면 주주들은 이 부담을 피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법인은 대주주의 조세피난처 역할을 수행한다. 법인세 감세가 투자를 늘리지도 못한 데다 많은 투자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성격의 투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특혜적 법인세율의 명분은 더 약해진다.


자산소득 중 특히 임대소득과 주식양도차익에 대한 과세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이 두 가지 자산소득은 물론 현재 1인당 2000만원 이상의 경우에만 불완전하게 종합과세되고 있는 이자와 배당소득을 소득세의 종합과세체계 내에 자리잡게 해야 한다. 소득세 최고세율을 50%로 올리는 것보다 이것이 실제적으로 더 중요한 과제다. 임대소득은 다주택자에게 발생하는 소득이며 이자, 배당, 주식양도차익도 대부분 소득 최상위 계층의 금융자산 소유자들에게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소득이다. 이런 소득을 정상적인 소득세율로 과세하는 것이 개인 간에 세부담을 공정하게 나누는 과세원칙의 근간인 ‘응능원칙(Pay-to-Ability-Principle)’에 부합한다.

새 정부의 세법개정안은 법인소득 및 자산소득의 과세정상화를 시도하면서도 일단 그 범위는 좁게 설정하고 있다. 법인세율 인상은 과세소득이 2000억원 이상인 대법인, 소득세의 경우 40%의 소득세율을 3억원 초과 소득부터 적용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그 이하 과세구간에도 넓게 포진한 납세자의 소득(법인소득 및 자산소득)에 대해 특혜적 혜택은 유지된다는 점에서 공정과세 실현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그러나 이런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에 국한한 증세는 일단 나머지 99% 국민을 과세부담에서 제외시켜 증세에 대한 공감의 폭을 넓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다음 단계에서 좀 더 큰 폭의 법인소득 및 자산소득 과세정상화가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반대
법인세 내리는 선진국과 '엇박자'…기업 투자와 고용 저해할 수도
고소득 기업 겨냥 법인세 인상 신중한 접근 필요

1970년대 전기 공급이 안정적이지 않던 시절 집안에서 겪은 일이 생각난다. 오래된 집은 가끔 퓨즈가 내려갔고 갑자기 중단되는 전기로 불편을 겪어야 했다. 그 원인이 집안에 전기제품 사용이 몰린 데 있는지, 전기배선이 어떻게 엮여 있고 어떤 방식으로 퓨즈가 작동하는지 파악하지도 못하면서 퓨즈를 없애고 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고가의 전자제품인 전축에 적정하지 않은 전류가 흘러 고장이 나서 수리비만 막대하게 들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대기업의 법인소득에 대한 증세와 고소득 임금소득자에 대한 증세 논의를 보면서 이때 경험이 떠오른다. 땜질식 처방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이다.

현재 제시된 증세안은 다음의 문제점을 갖고 있다. 먼저 이번 증세안은 새로운 재정 소요에 대해 주된 수혜 집단인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접근이 아니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새로운 복지 프로그램에서 가장 혜택을 많이 받는 집단이 소득조차 거의 없는 사회 최약계층이 아니라 중산층 소득세 면제자 집단인 만큼 이들이 조세 분담의 책임을 져야 하나, 이를 회피하고 있는 증세안이라는 문제다. 재정의 혜택을 받고 담세할 수 있는 소득이 있는 중산층에 대한 과세는 회피하고 특정 집단에만 경제적 부담을 지워 중산층 유권자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포퓰리즘적 증세 성격이 강하다.


둘째, 고소득 기업과 근로소득자에 대한 증세는 조세체계 전체에 대한 종합적인 개혁의 밑그림 없이 경제 전체 세원에 비해 매우 작은 부분에만 초점을 맞춘 부분적이며 미봉책 성격이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 도전에 대응한 한국 경제의 미래를 생각한 전반적인 구조적 개혁과 이를 위한 조세 재정정책의 근본적인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세체계 전체의 종합적인 밑그림을 지혜를 모아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의 공감대를 얻어 사회적 합의에 대한 일괄 타결을 이뤄내야 한다. 이번 증세안같이 조세체계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셋째, 고소득 법인에 대한 법인세율 인상은 그것이 복잡한 경제시스템에서 투자와 혁신 등 기업 활동에 어떻게 작용할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할 때 보다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법인세 인상론은 ‘과거 인하한 법인세율을 원상태로 정상화하는 것’이라는 주장과 ‘법인세율 인상이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저해한다는 경제학적 근거가 없다’는 주장을 원용하곤 한다.

전자의 주장은 현재는 세계적으로 저성장의 뉴노멀(new normal) 상태로, 경제적 환경이 변화해 과거의 조세정책과는 질적으로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과 선진국 대다수가 지속적으로 법인세율을 인하하고 있는 경향을 간과하고 있다. 후자의 주장은 비교적 단순한 경제적 모델에 근거한 것으로, 기업의 투자 의사 결정을 잘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경제라는 복잡한 시스템(complex system)에서 블랙박스에 해당하는 투자와 혁신 활동의 경우 작은 변화로 의도하지 않은 큰 파급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형태의 조세정책에 비해 보다 신중한 접근이 요구되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어떤 문제에 대해 그 원인과 출처를 충분히 파악하지 않고 즉흥적이고 땜질식으로 대응하면 기대한 결과보다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지금은 퓨즈나 만지고 있을 때가 아니라 건축물의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밑그림을 원점에서 다시 그려야 할 때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