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표류기] 청년작가 100인에게 묻다…"행복한가요"

입력 2017-07-28 10:03
수정 2017-07-28 10:44
현실과 이상 사이, 크리에이터들
일러스트페어 작가 100명 대면 설문
외주 '표준평균 단가표' 보여드립니다

평균 27.5세, 월 작품 수입 51만원
57% 외주, 58% 알바 등 투잡 병행
28% 직장생활.."관심 가져달라" 호소



지난 20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 코엑스. 그림을 가득 짊어진 청년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1평 남짓한 600여 전시 부스 벽면마다 수천장의 그림이 빼곡히 걸렸다. 750여 명의 젊은이는 자신의 창작물을 조금이라도 더 돋보이게 하려고 여념이 없었다.

연 1회 열리는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 2017(이하 페어)'의 풍경이다. 참여자 대부분이 창작을 업으로 살아가는 청년이다. '크리에이티브 코리아'를 슬로건으로 내건 대한민국이 그토록 원하던 '크리에이터'다.

이들은 과연 크리에이티브하게 살고 있을까. 혹은 앞으로는 크리에이티브하게 살 수 있을까. 뉴스래빗이 전시기간 4일 중 3일에 걸쳐 현장의 청년작가 100명을 직접 만나 설문조사를 벌였다. 대한민국 청년 작가 100인의 삶의 현주소를 보다 진실하게 들여다보고 싶어서다.



현장에서 만난 작가 상당수는 '외주'를 통해 돈을 벌었다. 대표적인 외주로는 출판물에 들어가는 삽화를 꼽을 수 있다. 외주비는 작업 크기와 장수로 계산한다. 작가마다 받는 금액은 천차만별이지만,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이 있었다. 계약이다.

프리랜서는 개인이고 외주를 주는 회사는 단체다. '회사방침'이란 말 한마디면 대부분 작가들은 할 말을 잃는다. 특히 신인 작가에 경우 더욱 그렇다. 생계 유지를 위해, 경력을 쌓기 위한 포트폴리오 때문에라도 일을 할 수밖에 없다. 황모 작가는 "책에 들어가는 그림 가격은 10년째 동결 수준"이라 말했다. 외주비는 관행처럼 굳어져 쉽게 변하질 않는다. 정 작가는 그 이유를 한 마디로 정리했다.

"당신 말고도 할 사람 많다."

익명의 작가로부터 받은 외주 '표준평균 단가표' (위 표). 일러스트레이션 외주작업 업계 시세표이자, 작업료의 마지노선과 같은 존재다. '이 가격 밑으로는 후려치지 말자'는 업계의 약속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만난 신인 작가들은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2년 차 신인 작가인 정모 씨는 예를 들어 이를 설명했다. "전공 대학생이 5만원에 그림을 그려주는데 굳이 작가에게 맡길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업체도 있다"며 "열정페이인 줄도 모르고 작업하는 학생과 작품의 질을 따지지 않는 업체 모두 문제다"고 말했다. 정 씨는 작업과정에서 작가의 고민과 노력이 무시당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현장에서 조사한 작가 100명 중 외주 수익이 있는 작가는 57명이었다. 일 특성상 수입이 유동적임을 감안해 최근 1년 간 그림으로 벌어들인 월 평균 소득을 물었다. 최고 300만원, 최저 10만원. 평균 80만2000원이었다.

출판업계는 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현장에서 바이어로 참석한 김모 씨는 "출판 업계가 사정이 좋지 않다"고 운을 뗐다. 제작 단가를 낮추려면 어쩔 수 없다는 게 출판사 입장이다. "이름있는 작가가 아니면 (저렴한) 단가에 맞춰주는 작가에게 일을 맡기는 편"이라 전했다.


외주 수입만으로는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다. 외주를 포함해 직장생활, 아르바이트 등 다른 돈벌이를 병행하는 '투잡' 작가가 많다.

100명 가운데 투잡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이는 58명이다. 이들 중 약 72%(42명)가 아르바이트와 작품 활동을 병행하고 있었다. 패스트푸드, 카페 종업원, 건설노동자 등 다양했다. 공통점으로는 주 5일, 40시간 이상 풀타임 근무자가 한 명도 없었다. 작품 활동을 위해선 아르바이트만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58명 중 직장인은 약 28%(16명)였다. 사무직, 디자이너, 미술강사 등으로 회사일과 작업을 같이 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박모 씨는 이 달 퇴사한다고 했다. 대학 졸업 후 전업 작가를 꿈꿨지만 불안정한 수입 탓에 일단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최소 생계를 유지할 돈을 마련한 뒤, 작품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페어에 참석했다고 했다.


페어에 나온 청년작가 상당수가 박 씨처럼 퇴사를 준비하거나 이미 퇴사했다. 현재 전업작가 중 1년 이내 퇴사자는 9명이었다. 모두 현재 그림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없었다. 안정적인 회사를 포기하고, 선택한 일인 만큼 아르바이트나 다른 일은 하지 않았다. 직장생활로 모은 돈을 기반으로 전업 작가로 자리잡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

재입사를 한 작가들도 있다. 3개월 전 다시 회사생활을 시작한 이모 씨처럼 말이다. 여전히 창작에만 오롯이 집중하고픈 마음은 떨쳐버릴 수가 없다. 페어 부스에 건 그림은 모두 퇴근 후 시간을 쪼개 그렸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보며 시간과 공을 더 들이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회사 생활을 병행한 작가들 대부분의 고민은 이씨가 다르지 않았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오늘도 그들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었다.



청년 작가 100명의 평균 나이는 27.5세다. 대학 졸업 후 취준생 또는 사회 초년생인 주변 청년에 또 다른 모습이다.

투잡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을 제외하고, 그림을 그려 버는 돈은 월 평균 51만5000원이다. 외주와 작품판매비, 저작권료, 2차 상품 등을 제작해 판매한 수익 평균이다. 개인마다 돈을 벌기 위해 들이는 시간도 작품마다 다르다. 정량적 평가가 이뤄지기 힘든 부분이다. 그럼에도 페어에 참여한 작가들은 공통된 고충을 가지고 있었다.

작가들은 입을 모아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행사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지만, 그림 구매는 거의 없었다. 그림값은 대부분 10만원 선. 기성작가에 비해 턱없이 저렴했다. 이마저도 대형 액자가 포함된 가격이다. 액자값만 보통 3만원이다. 1000원, 3000원짜리 엽서나 스티커, 뱃지 등 기념품만 드문드문 팔려나갔다.


뉴욕에서 작가 생활을 하다 국내에서 활동 중인 황 모작가는 "국내 그림 시장이 좁다"고 아쉬워했다. 대규모 페어에서조자 일반 대중이 돈을 주고 그림을 사는 경우는 드문 탓이다. 재테크 수단이 아니라 그저 거실에 놓고 바라보는, 일상 속 작품에 대한 개념은 여전히 부족하다.

3년 차 강 모 작가는 "많은 월급도, 안정적 삶도 바라진 않는다"고 했다. 그저 그림을 지속적으로 그릴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기만을 희망했다. 모두가 예술가일 필요는 없지만, 공무원이 꿈인 사회는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란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 ‘청년 표류기’ ? 세상과 사회라는 뭍에 무사히 닿기 위해 표류하는 우리네 청춘의 이야기입니다. 청년과 소통하기 위해 명함 대신 손을 내밀고, 넥타이 대신 신발 끈을 묶습니다. 여러분의 '청년 표류기'를 공유해주세요. 뉴스래빗 대표 메일이나 뉴스래빗 페이스북 메시지로 각자의 '표류 상황'을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기록하겠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책임= 김민성, 연구= 이재근 한경닷컴 기자 rot011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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