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호의 글로벌 프런티어] AI가 문화예술을 만났을 때

입력 2017-07-27 19:13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


알파고가 지난해 3월 이세돌 9단과 바둑 대결을 벌인 지 3개월 뒤 구글은 또 하나의 실험을 했다. 인공지능(AI)으로 예술 창작을 하는 실험이었다. 이른바 ‘마젠타 프로젝트’, 딥러닝 기법을 통한 기계학습으로 작곡하고 그림을 그리며 창작하는 일이었다. 알파고가 AI의 인지 능력과 학습 능력을 평가하는 실험이었다면 마젠타는 그야말로 예술창조 활동을 테스트하는 것이었다. ‘신의 한 수’를 넘어 ‘신의 유희’를 과시하는 의도였다.

마젠타는 당장 음악에서 존재감을 보였다. 첫 4개 음표가 주어진 상황에서 스스로 만든 알고리즘을 활용해 80초짜리 피아노곡을 선보였다. 음악은 음정과 박자라는 요소와 수학적 규칙이 존재하기 때문에 AI가 충분히 발전할 수 있는 분야다. 구글의 마젠타뿐이 아니다. 소니도 지난해 플로 머신즈라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작곡한 ‘대디스카’와 ‘미스터섀도’라는 곡을 유튜브를 통해 공개했다.

마젠타 프로젝트는 새로운 AI 화가도 만들어냈다. ‘딥 드림’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딥 드림은 서로 다른 이미지 패턴을 찾아 합성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어떤 작가도 그린 적이 없는 초(超)추상작품이었다. 지난해 전시회를 열어 29점의 작품을 판매하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도 구글에 질세라 네덜란드 델프트공대와 공동으로 렘브란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년간 인공지능을 통해 렘브란트풍의 새 작품을 그리는 것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21세기에 렘브란트가 다시 태어났다.

AI는 소설이나 영화 시나리오 창작에서도 엄청난 활동을 한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인공지능 제로가 현인강림이라는 소설을 출간했으며 미국에선 시트콤 ‘프렌즈’의 새로운 에피소드가 탄생하기도 했다.

이제 작곡하고 캔버스에 쓸 재료들을 찾기보다 데이터를 찾는 예술가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아주 추하고 소름 끼치는 작품도 생산될 전망이다. 이게 과연 예술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인간의 고유 영역인 창의성이나 감정적 교감, 직관적 판단을 AI가 갖는다 하더라도 인간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인간의 창조성과 감성도 단순한 데이터의 조합이라며 AI 예술을 옹호하는 쪽도 만만치 않다. 정작 구글의 전문가는 “결코 비틀스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AI 기술을 통해 예술가들이 더 창의적 활동을 할 수 있게 돕겠다는 의도”라며 “AI 예술이 일자리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예술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문화 예술 정책도 달라질 때다. AI를 활용해 예술적 감성을 풍부하게 하고 일자리도 늘릴 수 있는 문화 정책을 기대한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