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앓이 현대상선, 산업은행에 10조원 SOS

입력 2017-07-25 18:17
수정 2017-07-25 19:54
해운업계 대형화 바람 속 '소외'…장기생존 위해 선제적 투자 필요
'해운 위기' 때 핵심자산 팔아버려 선박·컨테이너 빌려 써 '고비용'
머스크 80원에 하는일 120원에…"현대상선 규모 키울 골든타임"


[ 안대규 기자 ] 현대상선(세계 15위권)이 장기적으로 생존하려면 2022년까지 10조원 이상의 투자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상위 선사들이 급속도로 덩치를 키우는 상황에서 ‘규모의 경제’를 조기에 달성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현대상선은 향후 5년 내 선복량(선박 보유량)을 현재의 두 배가 넘는 100만TEU(1TEU=길이 6m짜리 컨테이너 1개)로 확대해 세계 8위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10조원 어디에 필요하나

25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글로벌 컨설팅업체 AT커니의 컨설팅 결과를 토대로 향후 5년간 10조원 이상의 투자를 통해 대형 선박을 늘리고 터미널 등의 인프라를 대폭 확충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현대상선은 이를 대주주인 산업은행에 제출하고 대규모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현대상선은 우선 컨테이너선사로서 핵심 경쟁력인 선대 규모를 확대하기 위해 선박 발주에 5조6000억원가량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2만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40여 척을 확보해 선복량을 100만TEU로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의 선복량은 44만TEU(총 60척)로 일부 선박 임대에 활용하는 것을 제외하면 순수 영업에 34만TEU만 투입되고 있다. 세계 1위 선사인 머스크 선복량(350만TEU)의 10분의 1에 불과한 규모다.


업계는 현대상선이 지금처럼 작은 규모로는 고비용·저효율 경영구조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해외 경쟁사들은 빠른 속도로 몸집을 키우고 있다. 일본의 3대 선사(NYK·MOL·K라인)가 합병을 완료한 데 이어 중국 국유선사인 코스코도 이번달 홍콩 선사 OOCL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현대상선은 또 화물을 실어나를 때 쓰이는 컨테이너박스 150만 개 이상을 추가로 확보하기 위해 3조3000억원의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부산신항터미널을 비롯해 남미, 인도, 중동 등 국내외 주요 터미널 지분을 인수하고 고가의 용선 계약을 정리하는 데 드는 비용으로도 1조1000억원을 책정했다.

◆고비용 구조 깨야 생존

정부는 지난해 한진해운 파산 이후 하나밖에 남지 않은 국적 원양선사인 현대상선을 살리기 위해 1조5000억원가량을 투입했다. 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833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4000억원 규모의 손실을 예고하고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자구 노력이 부족하거나 영업을 못해서라기보다 고비용 원가 구조가 지속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현대상선은 컨테이너선사로서 가장 중요한 선박과 컨테이너박스 등 핵심 자산을 모두 빌려 쓰고 있는 신세다. 자사 소유 비중이 20%밖에 안 된다. 2013~2016년 채권단 자구안 이행을 위해 서둘러 현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상당량을 처분해버렸기 때문이다. 글로벌 선두권 선사들은 선박 소유 비중이 50~70%에 달하고 컨테이너박스 소유 비중도 80%가 넘는다. 핵심 기항지인 부산신항터미널 지분도 10%만 남기고 모두 팔아버려 상대적으로 높은 하역료를 부담하고 있다. 여기에 컨테이너 박스를 빌리는 데 드는 비용만 연간 1400억원에 달한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세계 1위 선사인 머스크가 80원에 할 수 있는 일을 우리는 120원을 들여 하고 있다”고 비유했다.

해운업계에선 현 상태로는 현대상선이 ‘2M(머스크, MSC)’과의 해운동맹 계약이 종료되는 2020년 3월 이후 중대 고비에 봉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형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센터장은 “지금 정도의 기업 규모로는 2020년 3월 이후 다른 해운동맹 가입도 어려워 미주와 유럽 등 장거리 노선 영업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앞으로 몇 년이 경영구조를 바꿔 놓을 골든타임”이라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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