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부자 증세’마저 속도전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21일 국가재정전략회의 전까진 증세의 ‘증’자도 없던 것이, 자고 나니 기정사실이 돼버렸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초(超)고소득자·초대기업 증세’로 운을 띄우자, 문 대통령이 “이제 기본방향은 정해졌다”며 공식화했다.
‘반년 농사’라는 세제개편안을 내달 2일 발표할 예정인 기획재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최근까지도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세율 인상은 없다”고 단언했다. 이에 따라 기재부는 기존 세율을 손대지 않는다는 전제로, 세제개편안을 사실상 확정한 상태다. 세제는 내년 예산 및 경제운용계획과도 직결된다. 그런데 고작 열흘 안에 ‘부자 증세’를 넣어 완전히 새로 짜야 할 판이다. ‘날림 증세’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더 가관인 것은 여당 인사들의 증세를 보는 시각이다. 처음엔 ‘부자 증세’, ‘핀셋 증세’라더니 ‘명예 과세’, ‘사랑 과세’, ‘존경 과세’ 등 작명이 봇물이다. 공론화도 없이 증세를 밀어붙이는 것도 모자라, 말장난 식으로 증세가 아닌 것처럼 위장하려는 행태로 비친다. 집권당이 세금을 이렇게 쉽게 여기니, 앞으로 무슨 명분으로 증세를 들고나올지 알 수 없다.
세금은 국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나라의 기본 중 기본이다. 방향을 바꾸더라도 거대 항공모함이 선회하듯 신중하고 사려 깊은 검토가 필수다. 여론조사에서 85%가 ‘부자 증세’를 찬성한 데 고무돼서도 안 된다. 본인의 세부담이 늘어나는 증세라면 정반대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국민 절반 가까이가 면세자이고, 특정계층에 세부담이 편중되는 문제는 방치하고, 편 가르듯 증세를 밀어붙여선 곤란하다. 보편적 복지에 상응하는 보편적 과세, ‘넓은 세원, 낮은 세율’ 에서 멀어진다면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