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
1825년 영국 첫 증기기관차의 속도는 시속 16㎞로 걸음의 4배 정도였다. 74년 뒤인 1899년 개통된 우리나라의 경인선(노량진~제물포) 열차도 시속 23㎞에 불과했다. 100㎞를 돌파한 것은 1985년이었고, 2004년부터 시속 300㎞의 고속철도 시대가 열렸다. 이로써 100년 전 서울에서 부산까지 17시간 걸리던 것이 2시간40분으로 줄었다.
고속철도 기술은 날로 발전해 시속 500㎞를 넘었다. 문제는 공기저항과 레일·바퀴의 점착력을 해결하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려는 기술이 자기부상열차다. 일본이 지난해 시속 600㎞가 넘는 자기부상열차 상용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공기저항과 열차를 선로에서 띄우는 전기 비용, 궤도 건설비 등의 어려움은 여전하다.
이런 한계를 단숨에 뛰어넘는 아이디어가 공기저항을 없앤 하이퍼루프(hyperloop)다. 자기부상열차가 진공에 가까운 0.001기압의 튜브터널 안에서 시속 1200㎞ 이상으로 달리는 ‘총알 열차’. 지난해 라스베이거스 사막에서 시험주행에 성공한 그 기술이다. 튜브터널 속의 캡슐형 객차는 마하 1.06(시속 1280㎞)까지 달릴 수 있다고 한다. 441㎞인 경부선을 16분 만에 주파할 수 있는 속도다.
이 기술은 전기차업체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2013년 제안했다. 그가 설립한 하이퍼루프원 등이 연구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스타트업 스카이트랜도 최근 미국항공우주국과 손잡고 기술개발에 들어갔다. 한국도 기술력에선 뒤지지 않는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지난해 자기부상 기술과 진공압축 기술을 융합한 한국형 하이퍼루프 초고속 캡슐트레인을 개발해 시속 700㎞ 시험에 성공했다. 이 부문 기술은 일본 등 다른 나라보다 앞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이퍼루프가 가장 먼저 달릴 곳은 중동 지역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튜브터널뿐만 아니라 모든 선로에 자기장 코일을 깔려면 초기 비용이 많이 드는데 여기에 중동의 ‘오일 머니’가 적격이라는 것이다. 어제는 머스크가 “워싱턴DC와 뉴욕을 29분 만에 주파하는 하이퍼루프에 대해 첫 구두 승인을 받았다”고 밝혀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막대한 개발비와 유지비, 지진 등 외부 위험, 대피처, 고장 대응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땅이 넓은 나라는 괜찮지만 한국 같은 데선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 정치인들이 자기 지역구에 정차역을 요구할 게 뻔하다는 것이다. 고속철 노선이 뱀처럼 구부러진 이유도 그 때문이었으니,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