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지는 국민연금 '경영 공백'
기금운용 차질 불가피
이사장 7개월째 빈자리…기금운용본부장 최근 사표
이사 상당수 임기 끝났지만 후임자 없어 자리 지켜
새 정부 주문 쏟아지는데
연금 투자·정책 결정하는 4차 재정추계위 구성 못해
[ 김일규 기자 ]
578조원에 달하는 돈을 굴려 2100여만 가입자의 노후를 책임져야 할 국민연금이 초유의 지배구조 공백 상황을 맞았다. 이사장(CEO) 자리가 7개월째 비어 있는 상황에서 기금운용본부장(CIO)마저 사표를 냈기 때문이다. 나머지 이사회 멤버 9명 중 4명은 임기를 넘기고도 어쩔 수 없이 버티는 상황이 됐다. 지배구조 공백으로 기금 운용에 차질을 빚으면 피해는 고스란히 가입자 몫이다.
이사회 멤버 절반 사실상 ‘공백’
국민연금은 작년 12월31일 문형표 전 이사장이 ‘최순실 사태’에 연루돼 구속된 뒤 7개월째 CEO가 없다. 국민연금 이사장은 보건복지부 장관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정부가 바뀌면서 아직 뽑지 못하고 있다.
이사장이 없는 상황에서 578조원의 기금 운용을 책임졌던 강면욱 전 기금운용본부장(기금이사)마저 지난 17일 돌연 사표를 냈다. 지난달 ‘측근을 요직에 앉혔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책임을 진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나머지 이사회 멤버 9명 중 4명은 이미 임기가 끝났지만 후임자가 없어 자리를 지키는 상황이다. 이사장 역할을 대행하고 있는 이원희 기획이사(상임이사)의 임기는 2015년 11월17일 끝났지만 2년 가까이 지나도록 어정쩡하게 앉아 있다. 최광 전 이사장이 2015년 10월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과 갈등을 벌이다 사표를 낸 데 이어 그해 말 취임한 문형표 전 이사장마저 1년 만에 자리를 비운 탓이다. 국민연금 상임이사는 이사장이 임명한다.
비상임이사도 줄줄이 임기가 끝났다. 최두환 전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부위원장(작년 9월11일 임기 종료), 이승철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2017년 1월22일),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2017년 7월5일) 등이다. 이들은 이사회에 아예 참석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을 대참시키고 있다.
후임 인선도 난항이다. ‘식물’ 상태인 전경련은 이승철 전 부회장을 대신할 사람조차 못 뽑고 있다. 일각에서는 전경련을 대신해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민연금 이사회 멤버를 추천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경총 역시 김영배 부회장을 재추천할지 고민 중이다.
김 부회장은 지난 5월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 우려를 나타냈다가 ‘경고’를 받았다. 비상임이사는 복지부 장관이 임명한다.
재정추계위원회 구성도 못해
국민연금이 지배구조 공백 상황을 맞으면서 중요한 의사결정이 지연되는 등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장기 재정추계 업무다.
국민연금은 재정의 지속가능성 평가 등을 위해 5년마다 장기 추계를 해야 하는데, 2013년 3차 추계에 이어 내년 4차 추계를 앞두고 있다. 3차 추계 땐 직전 해인 2012년 6월부터 추계위원회가 가동됐지만, 올해는 아직까지 위원 구성조차 하지 못한 상태다. 재정추계 결과는 국민연금의 모든 정책 결정에 필수적이다.
이사장과 기금운용본부장이 없다 보니 유망한 국내외 투자처를 발굴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이사장이 참석해야 하는 중요한 국제행사에 초청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주요 보직 인사도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작 지배구조 공백은 방치하면서 국민연금에 쏟아내는 주문은 한가득이다. 새 정부는 19일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내년 재정추계와 연계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소득 대비 연금액)을 인상할 방침임을 밝혔다.
기초연금과의 연계제도 폐지와 국민연금의 주식 의결권 행사를 강화하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도 숙제다. 금융권 관계자는 “새 정부의 방침이 기금운용 원칙 중 수익성과 안정성, 독립성을 다소 저해할 위험이 있다”며 “정권 입맛대로 이사장을 뽑을 경우 잘못하면 지난 정부의 과오를 되풀이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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