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못한 'L자형 배터리' LG화학이 해냈다

입력 2017-07-20 17:22
수정 2017-07-21 06:48
아이폰9에 독점 공급
종이접기식 '스택앤드폴딩' 방식
다양한 모양 자유자재로 구현
2㎜ 초슬림 배터리도 만들어


[ 고재연/노경목 기자 ] 2015년 6월. LG화학은 보기에 따라 다소 엉뚱해 보이는 발표를 했다. 원통형이나 직육면체가 아니라 정육면체나 ‘L자형’ 등과 같은 다양한 모양의 배터리를 개발했다고 선언한 것이다. “모양을 변형하면 스마트폰 공간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제로 적용된 제품이 없어 주목받지 못했다.


LG화학이 ‘프리 폼(free form·모양이 자유로운) 배터리’로 이름 붙인 이 제품군은 2년 만에 진가를 확인하게 된다. 내년에 세계 최초로 L자형 배터리를 양산하면서 첫 고객으로 세계 최고의 스마트폰 업체인 애플을 잡았기 때문이다.

◆왜 스택앤드폴딩인가?

당초 애플은 다양한 공급처 확보를 위해 중국의 ATL 등에도 L자형 배터리 개발을 주문했다. 개발비용까지 대며 2년간 기다렸지만 원하는 수준의 결실을 얻지 못했다. LG화학이 경쟁업체들과 차원이 다른 독자적인 배터리 제조 방식을 개발해 상용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LG화학이 2001년 자체 개발한 ‘스택앤드폴딩(stack & folding)’ 방식과 다른 업체들이 사용하는 ‘와인딩(winding)’ 방식의 차이다.


먼저 와인딩 방식은 양극재와 음극재, 그리고 둘 사이의 분리막을 길게 늘어놓은 뒤 김밥을 말 듯 말아서 배터리를 집적 하는 기술이다. 비용 대비 생산성이 높은 것이 최대 장점이다. 하지만 말아서 만드는 만큼 사각형이나 원통 등 정형화된 틀을 탈피하기 힘들다. 사각형으로 만들더라도 꼭짓점 부분은 뭉툭할 수밖에 없어 사각형 배터리 박스 안에 넣으면 그만큼 공간 낭비가 생긴다. 말린 배터리의 끝부분이 좁은 스마트폰 안에서 눌리면 배터리 구조 자체가 불안해질 위험도 있다.

반면 스택앤드폴딩 방식은 먼저 분리막을 바닥에 깔고 양극재와 분리막, 음극재가 들어 있는 개별 셀을 여러 개 올린 뒤 종이접기로 부채를 만들 듯 지그재그로 접어 올려 만든다. 잘게 접을 수 있는 만큼 다양한 모양으로 제작하는 것이 가능하다. 잘게 한쪽 방향으로 접다 90도로 방향을 바꿔 접을 수도 있다. 개별 셀의 크기도 와인딩 방식의 배터리보다 작아 2㎜ 미만 초슬림 배터리도 생산할 수 있다. 구조적으로 와인딩 방식에 비해 안정돼 있어 사고 위험도 적다.

다만 생산효율이 낮은 것이 단점이다. LG화학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꾸준히 기술 개발을 해왔다. 다른 회사들이 사용하지 않는 방식인 만큼 제조설비도 독자적으로 제작했다. 회사 관계자는 “오랜 연구 끝에 분리막 기술 등을 더욱 숙성시켜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었고 특허자산으로도 축적했다”고 설명했다.

◆뒤집어보면 애플의 승리

LG화학의 L자형 배터리가 사용된다는 것은 애플의 부품 집적 기술이 상당한 수준까지 발전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최신 스마트폰 내부는 카메라 모듈과 이미지센서부터 각종 메모리 반도체까지 물 샐 틈 없이 채워져 있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스마트폰 내부는 부품이 ‘ㄷ자’나 ‘ㄱ자’로 ‘I자’ 배터리를 감싸고 있다. 다른 배터리 업체들이 I자를 탈피할 이유를 못 느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애플은 각종 첨단부품 기술을 이용해 부품이 들어갈 공간을 줄이고 L자형 배터리를 집어넣을 공간을 확보했다. 애플이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TSMC와 손잡고 지난해부터 세계 최초로 적용하고 있는 팬아웃 기술도 눈길을 끈다. 반도체를 인쇄회로기판(PCB)에 올리지 않고 바로 입출력단자와 연결해 인쇄회로기판 부피만큼 스마트폰 크기도 줄였다. 3D(3차원) 낸드플래시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공간효율도 극대화했다. 한편 LG화학은 아이폰9 배터리 독점 공급에 대해 “고객사 관련 정보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고재연/노경목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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