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T로 문송시대 깬다]① IT 문외한 문과생, '아이디어'로 세계 홀리다

입력 2017-07-20 08:00
빈털터리에서 BBC가 주목하기까지…나를 키운 건 '실패 경험'
"순간을 포착하라" 성공을 좌우한 그들의 아이디어



청년 실업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문과생들의 취업난은 더 심각하다. 기업들은 관리직 보다 현장직을 선호하다보니 취직이 쉽지 않다. 문과생들이 공무원이나 각종 자격증 시험준비로 내몰리는 것도 다반사다. 때문에 자조적인 의미가 섞인 '문송합니다', '문송시대', '인구론' 등의 말까지 등장했다. '문송합니다'는 문과생이라서 죄송하다는 얘기다. 죄송한 이유는 여러가지다. 취직이 안되서, 일자리가 별로여서, 벌이가 시원치 않아서 등이다. 문제는 남들이 문과생을 비하하는 게 아닌, 당사자인 문과생이 죄송해 한다는 것이다. 왜 문과 출신은 주눅들고 어딜가던 미안하게 됐을까? 한경닷컴은 [ IT로 문송시대 깬다 ]를 통해 기술이라곤 모를 것 같은 문과생들이 용기있게 '창업'에 뛰어든 이야기를 담아냈다. 아직은 시작단계지만 문과생이 '죄송할 이유' 보다는 '반가울 이유'가 많다는 이들을 만나본다. [편집자주]

극심한 취업난이 지속되면서 정부나 대학 차원에서 최근 창업을 적극 권하고 있다. 청년 실업 해소의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업은 쉽지 않다. 문과생의 경우는 더 그렇다. 전문 기술이 없다보니 창업 업종이 푸드트럭 등 단순한 음식점업 또는 도·소매업에 쏠리는 이유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4월 발간한 '20대 청년 창업의 과제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도소매업(39.2%)과 숙박·음식점업(24.2%)이 전체 창업 업종의 60% 이상을 차지했다. ?은이들의 창업 분야가 기술 혁신이 아닌 시장 진입이 쉬운 '생계형 서비스업'에 집중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이러한 와중에도 정보기술(IT) 창업으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문과생'들이 있다. 작은 아이디어 하나로 세계 언론을 '깜짝' 놀라게 하거나 국제 전시회에서 기술 혁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공부보다 하고 싶은 일이나 취미 활동을 살려 IT 기업을 창업한 사례도 있다.

◆ 창업은 "용기 있는 자의 것"…김주윤 닷 대표 '3전4기'의 도전

시각 장애인용 스마트시계 '닷 워치'를 개발한 김주윤 닷(dot) 대표(워싱턴대 사회과학대)는 네 번째 창업 시도 끝에 현재의 자리에 올랐다. 닷 워치는 기존 스마트시계와 똑같이 블루투스로 스마트폰과 연동해 문자, 메신저 등 정보를 받아볼 수 있는 점자 스마트시계다. BBC, 타임지 등 세계적인 언론의 주목을 받고 팝스타 스티비 원더의 선주문을 이끌어낼 만큼 유명세를 누렸다.

김 대표는 어릴 때부터 창업을 꿈꿨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미국으로 조기 유학 간 뒤 창업해 성공한 것을 동경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미국 유학을 떠난 그는 대학 입학 후 닥치는 대로 창업 관련 수업을 들었다. 당시 숙박 공유 업체 에어비엔비가 급성장하는 모습도 그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입학 이후 6개월도 안돼 당장 실행에 옮겼다가 보기 좋게 실패했다.


"온라인으로 구인구직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인도인 프로그램 개발자가 귀국하면서 사업을 접게 됐죠. 당시에는 코딩을 못해서 인도 개발자가 다 했거든요. 그때부터 유튜브 등을 뒤져가며 '독학'으로 코딩을 배웠어요. 처음부터 IT 쪽에 도전하니 계속 같은 분야에 관심이 생기더라구요."

첫 번째 실패 이후 김 대표는 두 차례 창업을 시도했으나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나마 번 돈은 다음 창업자금으로 쓰다보니 빈털털이나 다름없었다. 남아있는 건 '열정'뿐이었다. 닷 워치는 2014년 그는 귀국해 본격적으로 네 번째 창업에 뛰어든 결과물이다.

◆ 기술보다 '아이디어'가 핵심…문과생, IT창업 오히려 유리해

2013년 웨어러블 기기 업체 쓰리엘랩스(3L Labs)를 설립한 이진욱 대표(사진·서울대 언어학) 역시 적지 않은 나이에 과감히 창업에 도전했다. 19년 동안 대기업에서 일한 풍부한 경험을 가졌던 그는 '경험'을 무기로 출사표를 던졌다. 신규 사업 부서에 몸담았던 그는 웨어러블 기기의 성장 가능성을 내다보고 스마트 신발이나 깔창 연구에 직접 나섰다.

"정말 많은 도전을 했습니다. 문과 출신이기 때문에 오히려 기술적인 한계를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런 거 만들어 보면 어떨까'하면서 계속 시도를 했죠. 오히려 기술적인 부분을 라고 있었다면 시도조차 못했을 기능들도 많습니다. 무식한 수준으로 덤벼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

이 대표는 사무실도 마련하지 못한 채 깔창에 설치할 센서 연구개발에 몰두했다. 주변에서는 '무모한 도전'이다 '기술도 모르면서 무리다'라는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이 대표는 연구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센서를 보란듯이 개발했고, 회사인 쓰리엘랩스를 설립하는 데 이른다.


쓰리엘렙스는 스마트 깔창 '풋로거'로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인 CES 2015에서 웨어러블 기술 혁신상을 수상했다. 기술력으로 무장한 국내 50여 개의 중소기업들이 도전했지만 쓰리엘랩스를 포함한 단 두 기업만 수상했다.

창업에 많은 사람들이 주저하는 이유는 실패시 치러야 할 기회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단 한번의 도전으로 창업에 성공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용기를 가지고 도전을 하더라도 높은 진입 장벽 탓에 IT 창업이 쉽지 않다.

하지만 경험자들은 "기기 개발의 자세한 부분을 몰라도 IT 창업이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IT창업에 있어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이기 때문이라는 것. 이러한 아이디어는 기술의 한계를 고려하지 않다보니 오히려 좋은 사업의 기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 기술개발 과정, 직접 개발 만큼이나 협업이 중요

시각 장애인용 스마트시계 '닷 워치'를 개발한 김주윤 대표와 스마트 깔창 '풋로거(FootLogger)'를 만든 쓰리엘랩스의 이진욱 대표 모두 아이디어가 창업의 핵심 동력이었다.

김 대표의 경우 네 번째 재기를 꿈꾸던 어느 날 우연히 대형 점자 단말기에 의지해 글을 읽는 시각 장애인들을 보게 됐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을 감안하면 뭔가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이 들었다. 바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일을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찰나를 포착해 공익성과 사업성을 모두 가진 아이템을 발굴한 순간이었다.

3년여의 짧은 기간 스마트 점자 시계 '닷 워치'를 개발한 비결도 시각 장애인에게 디지털 기술의 혜택을 주기 위해 꾸준히 아이디어를 쏟아부은 덕분이었다. 하나하나 원하는 사항을 반영할 때까지 공장 여러 곳을 다니며 시제품을 만들었다. 느리지만 문제점을 해결해 원천 기술을 만들었다.

기술력 있는 대학 연구진에게도 직접 러브콜을 보냈다.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및 부산대·가천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등 우수한 연구진으로부터 핵심 부품·점자번역 엔진에 대한 조언을 받았다.

"문과 출신도 충분히 IT 창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에어비엔비 창업자도, 스티븐 잡스도 모두 이공계 전공자가 아니잖아요. 스티브 잡스도 '창의적인 IT 제품은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서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개발은 실력 있는 개발자들한테 맡기면 됩니다. 두 가지 분야가 섞이면서 새로운 혁신이 나오는 거죠."(김 대표)

문과생의 경우 IT 제품 개발에 대한 아이디어 및 보완사항을 제시하고 나머지는 개발자에게 맡기는 게 효율적이라는 조언이다. 스마트 깔창 '풋로거'를 개발한 이 대표 역시 스마트 깔창을 만들겠다는 초기 구상은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러나 회사에서 직접 할 수 없는 개발은 20개가 넘는 업체들과 협업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웨어러블 디바이스, 사물인터넷(IoT) 등의 성장 가능성을 절감하고 있다가 매일 신는 신발에 주목하기 시작했어요. 매일 신는 신발인데 스마트 신발이나 깔창에 관심 갖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족적이라는 게 많은 생체 정보를 담고 있는데 앞으로 이 시장이 앞으로 수십조 원 규모로 커질 것이라고 믿어 깔창 개발을 시작했죠."(이 대표)

문과대 출신 이 대표 역시 개발 부문은 잘 모른다. 다만 제품 개발의 수정·보완을 지시할 만큼의 기본 원리는 이해하고 있다. 그가 개발한 풋로거는 걸음걸이 측정뿐 아니라 자세 교정과 열량 분석, 척추질환 진단 등이 가능해 CES 2015에서 주목받았다. 현재 국내 특허 10여 건, 해외 특허 4건을 보유한 혁신 기업으로 성장했다. 두 사례 모두 제품에 대한 필요성, 즉 아이디어로 현실로 꾸준히 구체화시킨 덕분에 혁신형 창업이 가능했다. (계속)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김소현 한경닷컴 기자 ksh@hankyung.com
그래픽=강동희 한경닷컴 기자 ar491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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