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돈만 많으면 행복할 사람들

입력 2017-07-16 17:38
이순원 < 소설가 >


살다 보면 참 많은 사람을 만난다. 내가 탐사한 강원도 바우길 위에서도 만나고, 이런저런 강연회와 이런저런 술자리에서도 만난다. 그중에서도 관심이 가는 건 노년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나이로 보면 대략 쉰부터 예순 살 아래의 사람들이다.

“이젠 꽤 오래된 일이지만 IMF가 온 게 제 나이 서른일곱 살 때였어요. 큰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고 작은아이가 걸음마를 하던 때였는데 나이로 보면 그때 직접적인 감원 대상이거나 퇴출 대상은 아니었지요. 그렇지만 지난해 쉰다섯 살까지 하루하루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언제 어떤 일로 회사를 나가게 되지 않나 늘 불안한 마음이었어요. 그건 회사를 그만두고 새 직장을 구하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집 장만하고, 아이들 공부 가르치다 보면 사실 저축이라는 건 거의 생각할 수도 없어요. 한 달 한 달 생활비가 늘 빠듯합니다. 예전에 집을 사느라 대출한 부채도 있고, 제가 만약 어느 날 잘못된다면 그 순간 바로 우리 가정은 풍비박산나는 겁니다. 저뿐 아니라 도시의 각 가정마다 삶이라는 게 어느 날 그 집 가장의 신상에 변화가 있으면 가정도 바로 그날 그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간다는 거지요.”

“직장이 서울역 부근이다 보니 오가며 그곳에 있는 홈리스를 많이 보게 됩니다. 그중엔 정말 우리 나이 정도의 정말 멀쩡하게 보이는 사람도 많거든요. 오가며 볼 때마다 그들과 나의 차이를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그곳에 나온 사람들은 아닐 겁니다. 전엔 직장도 다니고 돈벌이도 했겠지요. 나하고 차이라면 나는 지금 나갈 직장이 있고, 그들은 없어서 그곳으로 내몰렸는지도 모르지요. 내가 지금 앉아 있는 자리와 그가 지금 앉아 있는 자리가 아주 다른 자리이긴 하지만 그게 천 리 밖의 자리가 아니라는 겁니다.”

“직장 동료들이나 명퇴해 나간 다음 다른 일을 하다가 잘못된 선배들 얘기를 들으면 참 우울합니다. 우리가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 지금 우리 나이의 직장 상사들을 보면 저 사람은 어떻게 노는 법도 모르나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분들은 일하는 것만 배우고 쉬는 것과 노는 것은 전혀 배우지 못한 사람들 같았어요. 그러다 보니 권고사직이든 명퇴든 회사를 나간 다음 바로 다음 일거리를 찾는 겁니다. 잠시라도 집에서 쉬는 자신을 용납할 수 없고, 또 노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쫓겨 다음 일거리를 부랴부랴 정합니다. 그러고는 얼마 후 안 좋은 소식을 듣게 되는데, 요즘 생각해보면 우리야말로 선배들처럼 일하는 것만 배웠지 노는 법을 배우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사실 이런 걱정으로부터 벗어난 부유한 사람들은 왜 없으며 팔자 편한 사람들은 또 왜 많지 않겠는가. 그러나 길 위에서든 어디에서든 내가 만난 보통사람들 대부분 무엇엔가 피로 누적을 느끼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건강에 대해 많은 신경을 썼다. 자기의 몸이 자기의 것이 아니라 보다 큰 몫으로 가족의 것이며, 스스로 건강하지 않으면 가족의 울타리가 되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평소의 소원이든 지금 당장 바라는 바를 말해보라고 하자, 첫마디에 그냥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얼마큼요? 하고 물었을 때 각기 달랐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돈만 많으면 그 즉시로 지금 가슴에 안고 있는 모든 근심과 걱정, 불안을 떨쳐내고 바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들 같았다. 누굴 탓하거나 원망할 것 없이 우리가 사는 모습이 바로 이러지 않나 싶다.

이순원 <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