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강화도 기행

입력 2017-07-14 18:39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강(江)을 끼고 있는 빛나는(華) 땅. 강화도(江華島)는 섬이지만 어업보다 농업이 발달했다. 농사 짓는 집이 9000가구가 넘는데 물일하는 집은 300가구도 안 된다. 예부터 전략적 요충지여서 식량을 확보하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많은 평지가 고려시대 이후 간척과 매립으로 생겼다.

강화에는 역사 유적이 많다. 고인돌부터 시작해서 하도 많아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린다. 개성이 건너다 보이는 곳엔 고려 궁궐터가 있다. 몽고와 싸우기 위해 39년간 수도를 옮겼던 흔적이다.

동부해안에는 4대 전쟁 역사 유적지인 갑곶돈대,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이 있다. 역사의 고비마다 외세의 침략을 막아낸 곳이다. 신미양요 격전지였던 광성보에는 당시 전사한 병사들의 무덤과 장수 어재연을 기리는 쌍충비각이 있다. 병인양요 때 양헌수 장군이 프랑스군을 막아냈던 정족산성의 길이는 2300m에 이른다. 인근 전등사는 고구려 때 세운 고찰이다. 강화읍 관청길에 있는 강화성당은 국내 최초의 한옥 성당이다.

풍광도 아름답다. 소나무 숲이 두레밥상처럼 펼쳐진 동막해변과 민머루해변의 일몰은 그림 같다. 아이들과 조개, 낙지를 잡으며 갯벌체험까지 할 수 있다. 철마다 장어요리와 밴댕이회·무침, 단호박 넣은 꽃게탕 등을 즐기는 맛기행도 빼놓을 수 없다. 가끔은 7㎏이 넘는 민어가 앞바다에서 잡히기도 한다.

동막해변 부근에는 ‘강화도 시인’ 함민복 씨가 산다. 우연히 마니산에 놀러왔다가 너무 좋아 폐가를 빌려 눌러앉은 지 20년이 넘었다. 월세 10만원짜리 방에서 바다와 갯벌의 생명을 노래하다 생활비가 떨어지면 방 가운데 빨랫줄에 걸린 시 한 편을 떼어 출판사로 보내던 그. ‘시 한 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라던 시인은 몇 년 전 결혼해서 인삼가게를 열었다.

광성보 잔디밭에는 ‘천만결 물살에도/ 배 그림자 지워지지 않는다’는 함민복 시 ‘그리움’이 새겨져 있다. 옛 시인의 자취도 남아 있다. 고려 최고 시인 이규보가 길상면 길직리에 잠들어 있다. 몽고군을 피해 강화로 온 이규보는 평생 8000수의 시를 남겼다. 그중 2200수가 전해온다.

지난달 석모대교가 개통된 뒤로 강화를 찾는 사람이 늘었다. 본섬과 석모도를 오가던 뱃길은 3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새우깡을 받아먹으며 줄지어 날아오던 갈매기의 추억도 옛일이 됐다. 이달부터는 주말마다 문화관광해설사가 동행하는 ‘테마투어’ 버스가 운행된다고 한다. 다시 그 섬에 가고 싶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