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미 FTA 개정' 공식 요구
한·미 정상회담 12일 만에 전면적 통상압박
미국, 무역적자 감축·비관세장벽 해소에 초점
안보와 연계…방위비 분담 확대 꺼낼 가능성
한국, 대미투자·에너지 수입 늘려 대응할 수도
[ 워싱턴=박수진/조미현/오형주 기자 ]
한국에 대한 미국의 통상압박 ‘시계추’가 빨라지고 있다. 당초 내년 이후에나 제기될 것으로 예상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공식용어는 개정) 요구가 최소 6개월 앞으로 당겨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방위비 분담 확대 등으로 한국에 대한 압박의 강도와 범위를 확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FTA 청구서’ 예상보다 빨라
지난달 30일 발표된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문에는 한·미 FTA에 대한 언급이 없다. 무역과 관련해서는 ‘상호적 이익과 공정한 조치를 통해 무역 확대와 균형을 추구한다’는 다소 모호한 문구만 들어갔다.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잇단 한·미 FTA 재협상 요구 발언에 “합의 외 얘기”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한·미 정상회담 12일 만에 한·미 FTA 개정 요구가 공식 전달됐다. 워싱턴 외교가는 이를 상당히 전격적인 조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말 이후 간간이 한·미 FTA 재협상 문제를 거론했지만 상당히 대응 속도가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한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이후 올 4월 말까지 한·미 FTA에 대한 언급을 안 하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논란을 계기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며 “특히 정상회담 직전 한·미 FTA를 핵심의제로 올린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드 배치, 대북제재 등에서 엇박자를 내는 한국의 새 정부에 대한 다분히 의도적 조치라는 분석이다.
◆“협정 개정 없이도 합의 가능”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한국에 보낸 특별공동위원회 소집 요청 서한을 통해 △협정의 이행 문제 △비관세장벽 철폐 △무역 불균형 문제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협정이행 부문에서는 법률시장 개방문제 등을, 비관세장벽은 자동차 연비와 오토바이 고속도로 주행금지 등 구체적인 이슈들이 거론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가장 큰 관심을 두는 부분은 무역 불균형이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미국으로선 진정으로 공평하고 평평한 경쟁의 장을 만드는 것과 균형된 무역을 성취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는 무역 불균형의 원인부터 따져보겠다는 방침이다. 문 대통령은 13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양국의 자동차 교역현황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FTA가 발효된 5년 동안 우리가 미국에 자동차를 수출한 건 오히려 줄고 반대로 미국으로부터 한국이 수입한 건 많이 늘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미 FTA 발효 후 교역 내용을 조사·분석·평가하자고 역제의하기도 했다.
통상 실무선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FTA가 무역 불균형의 직접적 원인이 아닌 만큼 △미국 내 제조업 투자 확대 △에너지·방산 분야에서의 수입 확대 등 FTA 틀 밖에서 미국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해법이 가능하다는 분석도 있다.
◆안보·통상 연계 가능성 주목
문제는 한·미 FTA 개정으로 미국의 요구가 끝날 것인가 하는 우려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별공동위가 열리면 미국은 통상문제뿐 아니라 안보비용 분담 얘기를 함께 하면서 압박해올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도 “트럼프 대통령은 안보와 경제를 교묘하게 연계하는 측면이 있다”며 “한·미 정상회담 때 안보 면에서 한국 입장을 받아준 것과 연계해 FTA와 방위비 분담금 얘기를 함으로써 향후 협상의 지렛대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려는 전략을 쓸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조미현/오형주 기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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