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이슈진단] "경영권·세법·가족문제…가업승계는 이 모든 걸 아우르는 종합예술"

입력 2017-07-13 18:13
수정 2017-07-14 07:38
김낙훈의 특별 대담

한국가족기업연구원 조병선 원장·최봉길 부원장
독일·일본 '중소기업 강국'이지만 후계자 없어 문 닫는 기업 많아
한국도 창업 1세대 고령화 직면…승계 문제로 자녀 간 분쟁 급증

'후계자=장남'인 시대는 지나…기업 차원서 자녀들 육성 필요
상속세 절세대책은 부모가 마련…과세표준 등 합법적 대책 세워야


[ 김낙훈 기자 ]
창업세대가 점차 고령화되면서 가업승계 과정에서 위기를 맞는 기업이 곳곳에서 생기고 있다. 자녀들 간 분쟁으로 탄탄한 기업이 공중분해 위기를 겪는가 하면 가족 간 소송으로 화목이 깨지고 원수로 돌변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한국가족기업연구원은 이런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돕자는 뜻에서 비영리법인인 사단법인 형태로 2015년 서울 삼성동에서 출범했다. 상근인원은 3명에 불과하지만 세무 법률 회계 금융 전략 분야의 전문가와 교수 연구원 등 70여 명으로 인력풀을 구성, 사안별로 협력하고 있다. 이 단체를 이끄는 조병선 원장(63)과 최봉길 부원장(61)을 만나 가업승계에 얽힌 얘기와 해결책을 들어봤다. 독일 쾰른대 법학박사인 조 원장은 기업은행 경제연구소장 등을 지낸 중소기업 전문가다. 세무사이자 법학박사인 최 부원장은 상속·증여세 전문가로 법무법인 화우의 세무고문도 맡고 있다. 사회는 김낙훈 한경 중소기업전문기자가 맡았다.

◆사회= 한국가족기업연구원을 설립한 지 2년이 됐습니다. 최근엔 《100년 기업으로 가는 길》이라는 저서도 출간했고요. 《가족기업 경영과 승계전략》이라는 기본서도 발간했네요. 1세대 창업자가 고령화되면서 원활한 가업승계가 요즘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조병선= 가업승계는 ‘가족기업이 대를 이어 생존해 나갈 수 있도록 계획하고 관리하는 장기간의 프로세스’입니다. 제2의 창업에 해당하죠. 성공적으로 사업을 승계한 기업은 더 좋은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가문의 번영과 양질의 일자리 제공 등 경제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한 기업은 활력을 상실하게 되는데 현장에선 좋은 기업이 승계과정에서 승계계획 부재, 가족 갈등 및 분쟁, 후계자 문제 등으로 잘못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회= 가업승계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어떤 게 있습니까.

◆조병선= 주된 애로는 과다한 상속세 부담, 후계자 육성의 어려움, 승계와 관련한 이해관계자 관리 등입니다. 후계자 문제는 산업화 역사가 오래된 선진국에서도 중요한 정책과제의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독일에는 승계지원 정책이 잘 정비돼 있고 명문 장수기업도 많습니다. 하지만 가업을 승계하지 못해 폐업하는 기업도 적지 않습니다. 2005년 가업승계가 이뤄진 기업은 약 7만 개인데 이의 10%에 해당하는 7000여 개 기업은 승계할 후계자가 없어 문을 닫았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중소기업청의 중소기업백서를 보면 2005년 기준으로 약 30만 개의 사업체가 폐업했는데 그중 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7만여 사업장은 적절한 후계자가 없어 문을 닫았습니다. 이제 한국도 후계자 문제가 큰 이슈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최봉길= 가업승계는 경영권 소유권 세법 상법 신탁법은 물론 가족과 인간의 심리문제까지 아우르는 해결책이 필요한 종합예술입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해결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닙니다. 승계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과 다툼도 원만하게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 연구원이 법무법인을 비롯해 여러 기관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종합적인 관점에서 기업과 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해결책을 제시하자는 것입니다.

◆사회= 분쟁 사례를 구체적으로 소개해주시겠습니까.

◆조병선= A사는 매출 700억원, 근로자 수 370명, 업력 70여 년의 중견 가족기업입니다. 창업 3세대에 속하는 B씨를 비롯한 세 명의 자녀들 사이에 경영권과 재산을 둘러싼 갈등이 심각한 상황이었어요. 승계계획이 불투명하고 재산 분배 준비를 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B씨의 부친인 최고경영자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잘나가던 회사는 경영상 어려움에 처하게 됐고 세 명의 형제들은 재산상속 관련 소송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를 지켜보던 B씨의 어머니는 우리 연구원을 찾아 해결 방안을 요청했습니다. 세무·법률 및 경영전략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컨설팅 팀의 도움을 받아 결국 가족의 평화를 찾았고 기업도 안정을 되찾은 사례가 있습니다.

◆사회= 가족기업이 왜 중요한가요.

◆조병선= 가족기업은 가족이 소유·경영하는 기업으로 승계가 이뤄졌거나 이뤄질 것으로 예견되는 기업을 의미합니다. 국민경제의 다수에 해당하는 가족기업은 일자리 창출과 혁신을 주도하고 지역사회 발전에 공헌하는 중요한 경제주체입니다. 가족기업의 상당수는 가계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생계형 기업이지만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은 물론 대기업 중에도 가족기업 형태를 띤 곳이 많습니다. 대체로 자유시장 경제국가의 전체 사(私)기업 중 80~98%가 가족기업이고 세계 근로자의 50~75%가 가족기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사회= 가족기업의 강점과 단점은 무엇일까요.

◆최봉길= 가장 큰 강점은 가치관과 신념을 공유해 단결력이 있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영할 수 있다는 점이죠. 반면 족벌주의와 온정주의에 흐를 수 있는 단점이 존재합니다. 경영권과 소유권 승계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위기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사회= 원활한 가업승계를 위해선 어떤 점이 필요한가요.

◆조병선= 저는 이를 ‘성공적인 가업승계를 위한 십계명’이라고 부릅니다. 창업자와 후계자, 가족 구성원 모두가 ‘가업승계는 사랑과 인내로 빚는 종합예술’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서로 소통하면서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단순한 물적 재산으로서의 기업’이 아니라 ‘창업 이념과 가치, 청지기정신, 기업 소유자로서의 책임’을 계승해야 합니다. 다양한 위험과 갈등 요인을 관리하는 데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최봉길= 상속에 따른 세금 관리와 법률 문제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승계타이밍도 중요하고요. 가족기업 대표의 은퇴 후 삶도 잘 준비해야 합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업을 적기에 승계하기 어렵고 승계 이후에도 경영에 수시로 간섭하게 돼 세대 간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다만 어른으로서 큰 울타리가 돼주는 것은 좋습니다. 그런 경우엔 역할과 범위를 명확히 설정해놓는 게 필요합니다.

○사회= 후계자를 누구로 정하고 어떻게 육성하는지가 중요하지 않습니까.

○조병선= 맞습니다. 기업의 영속성을 위해선 유능한 후계자를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장남이라고 해서 가업을 물려받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사업가적인 소질이 있고 가업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있는 자녀를 후계자로 선정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경영자를 키우는 일은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경영능력, 리더십, 공감능력, 스마트한 의사결정력, 관련 분야 전문성 등 다양한 역량을 배양해야 합니다. 따라서 기업 차원의 체계적인 육성계획과 최고경영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사회= 상속세 절세방안도 있는지요.

◆최봉길= 사람이 언제 얼마나 많은 재산을 남기고 세상을 떠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상속세 절세대책을 세우는 일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상속이 이뤄지면 큰 부담을 떠안게 됩니다. 사전에 절세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자녀들 입장에서 절세대책을 세우면 불효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피상속인인 부모가 세우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핵심은 과세표준을 낮추는 것인데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여러 방안이 있습니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는 전문가와 상의하는 게 좋습니다.

◆사회= 프랑스에 본부를 둔 레 제노키앙협회는 200년 이상 된 명문 장수기업의 모임입니다. 한국 기업 중에는 아직 회원이 없습니다. 우리도 100년 장수기업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요.

◆조병선= 원활한 가업승계는 명문 장수기업으로 가는 관문입니다. 하지만 가족기업이 커다란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경쟁 심화와 창업세대의 고령화, 승계과정에서의 위험 및 갈등해결 능력 부족 등이 큰 걸림돌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기업과 사회, 국가를 위해 무척 중요합니다. 한국에도 장수기업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체계적인 노력과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세금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족기업 경영자와 후계자는 건전한 철학과 비전, 소명의식이 중요합니다. 특히 사회와 가족, 임직원 고객 등에 대한 책임과 ‘청지기적 사명(stewardship)’을 가져야 합니다. 가업을 가문의 유산이라고 생각해 잘 관리하고 더 좋은 기업을 만들어 다음 세대에 물려준다는 인식이 중요합니다. 선진국 장수 가족기업의 대부분은 가문의 명예와 가족기업의 평판을 동일시하면서 지역사회 및 임직원과 함께 성장해나가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리=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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