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 잠식하는 글로벌 PEF…'토종'은 괴롭다

입력 2017-07-13 17:35
국내 PEF의 주요 '먹거리'였던 지분투자 분야 공략

시장 파고드는 글로벌 PEF
세계 4대 운용사인 KKR·TPG
'전매특허' 경영권 인수 대신 최근 지분투자 거래 잇단 성사

비상 걸린 국내 대형 PEF
지분투자 일색이었던 국내 PEF
미집행금액 사상 최고 수준…국민연금도 고육책 마련 나서


[ 정영효 기자 ]
2008년 하나로텔레콤(현 SK브로드밴드) 매각을 끝으로 한국을 떠났던 미국 대형 사모펀드(PEF) 운용사 TPG가 최근 국내에서 9년여 만에 성사시킨 인수합병(M&A) 거래에 토종 사모펀드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대형 바이아웃(경영권 인수)일 것이란 예상을 깨고 상장 전 지분 매각(프리IPO)을 첫 거래로 삼아서다. TPG는 지난달 30일 카카오에서 분사한 카카오모빌리티(카카오택시·카카오드라이버·카카오내비) 지분 30%를 약 5000억원에 사들였다. 토종 사모펀드들은 자신들의 주무대였던 프리IPO 거래에 글로벌 PEF들이 속속 뛰어들자 적지않게 당황하는 분위기다.

◆변화하는 글로벌 PEF 투자 전략

TPG뿐 아니다. 최근 글로벌 PEF들이 국내에서 추진하는 거래는 전매특허인 바이아웃 대신 지분투자 일색이다. 미국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는 LS오토모티브와 LS엠트론 동박사업부를 묶은 사업부 지분을 30%가량 인수하는 협상을 진행 중이다. LS그룹은 ‘통매각’을 원했지만 KKR이 일부 지분만 인수하는 프리IPO 거래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화그룹이 시스템통합(SI) 계열사 한화S&C 지분 49%를 매각하는 거래의 예비입찰에도 CVC캐피털, 베인캐피털 등 글로벌 PEF들이 대거 참여했다.

투자은행(IB) 업계 전문가들은 글로벌 PEF들의 한국 투자 전략이 변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기존 경영진과의 협업을 통해 함께 기업가치를 키워가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대기업들이 경영권 매각에 인색해 대형 거래의 싹이 마르자 프리IPO 거래 등으로 투자전략을 다양화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핸리 크래비스 KKR 회장은 지난 5월 미국 경제지 포천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15년간 전 세계 기업들이 국부펀드 헤지펀드 벤처캐피털 등을 통해 자금을 자유롭게 조달할 수 있게 되면서 PEF의 투자 형태도 인수에서 지분 투자로 변했다”고 말한 바 있다.


◆쌓이는 ‘드라이파우더’

괴로운 건 토종 PEF들이다. ‘글로벌 PEF는 대형 바이아웃에 집중하고 토종 PEF들은 프리IPO와 같은 틈새시장을 노린다’는 과거의 공식이 깨지면서 투자처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PEF들이 기관투자가들로부터 약정을 받았지만 아직 투자에 사용하지 못한 이른바 ‘드라이파우더(미집행금액)’는 지난해 말 현재 18조6000억원에 달한다.

아시아펀드를 표방하는 MBK파트너스, 한앤컴퍼니 정도를 제외하면 토종 사모펀드들은 대형 바이아웃 시장에 아직 명함을 내밀지 못하고 있다. IMM PE는 토종 사모펀드로는 처음으로 지난해 1조원이 넘는 펀드(3호펀드·1조3000억원) 조성에 성공했지만 최근 4480억원에 에이블씨앤씨를 인수하기 전까지 2년간 4건의 거래가 모두 지분투자였다. IMM과 함께 양대 토종 PEF 운용사로 꼽히는 스틱도 중형 바이아웃이나 지분 투자에만 집중하고 있다.

국내 최대 PEF 출자자(LP)인 국민연금이 올해 대형(라지캡) PEF 출자 대신 공동투자펀드 제도를 도입한 것도 토종 사모펀드에 새로운 투자금을 쏟아붓는 대신 이미 만들어진 PEF가 투자금을 활발히 쓰게 하려는 고육책으로 해석된다. 한 토종 PEF 대표는 “경영참여형 사모펀드 제도가 도입된 지 13년이 지났지만 토종 PEF들은 대형 바이아웃 시장에 진입하지 못했다”며 “그런 상황에서 투자 전략을 다양화하고 있는 글로벌 PEF들에게 프리 IPO 시장마저 빼앗길 것이란 우려가 많다”고 전했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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