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빅텐트' 떠나자 단숨에 국내 판매 1위
'현대' 이름 빼고 다 바꿨다…눈빛이 달라졌다
만년 3위, 각자도생 전쟁터로
대형대리점으로 딜러망 바꾸고 AS대응 위해 '하이테크팀' 운영
독립 한달 만에 굴삭기 1위
2023년 글로벌 매출 7조 목표…러시아 굴삭기 36대 수주 '잭팟'
OEM 납품 등 해외 매출 확대
[ 박재원 / 안대규 기자 ]
국내 굴삭기시장 ‘만년 3위’이던 현대건설기계가 한국 건설장비업계 판도를 흔들고 있다. 지난 5월과 6월에는 부동의 1위였던 두산인프라코어를 누르고 두 달 연속 판매 1위로 올라섰다. 4월 현대중공업에서 분사돼 독자생존 시험대에 오른 것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따뜻한 빅텐트’인 현대중공업을 떠나면서 “이제 우리 힘으로 살아야 한다”는 임직원의 절박함이 기업 체질을 몰라보게 변화시켰다는 평가다.
11일 한국건설기계산업협회에 따르면 현대건설기계는 5월 국내 굴삭기시장에서 333대를 판매해 1위에 올랐다. 현대중공업 건설장비부문에서 현대건설기계로 새롭게 출범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이룬 성과였다. 이 회사는 지난달에도 2위 두산과의 판매 격차를 22대로 벌린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건설기계는 이 같은 성장세에 힘입어 올 상반기 굴삭기 누적 등록 대수에서 업계 2위를 차지했다.
국토교통부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현대건설기계의 1~6월 굴삭기 등록 대수는 1825대로 업계 2위이던 볼보건설기계코리아(1475대)를 큰 격차로 앞질렀다. 두산인프라코어(2282대)는 지난 1분기에 압도적인 실적을 거둔 덕분에 1위를 유지했다. 국내 굴삭기 판매 시장에서 만년 3위이던 현대건설기계가 1, 2위권으로 치고 올라간 것은 4년 만이다.
지난해만 해도 2위 볼보건설기계와 3위 현대중공업의 격차는 연간 300대 이상 벌어졌다.
현대건설기계가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분사 이후 일하는 분위기가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현대중공업의 단일 사업부에서 독립기업으로 탈바꿈하면서 내부 긴장이 높아지고 생존력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공기영 현대건설기계 사장은 “과거 현대중공업 내 ‘원 오브 뎀(one of them·여럿 중 하나)’으로 지내면서 조직에 만연해 있던 느슨함을 찾아볼 수가 없다”며 “직원들의 눈빛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확 바꾼 판매·AS 시스템
판매 실적이 고르게 좋아진 데는 분사 이후 중고유통센터를 설립해 영업망을 강화하고 소비자가 가장 민감해하는 사후서비스(AS) 역량을 강화한 것도 주효했다. 우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국내 딜러망을 광역단위 대형 대리점 형태로 대폭 개편했다. 국내 1위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대형화를 위한 투자가 불가피했다는 것이 공 사장의 설명이다.
중고유통센터를 세운 것은 중고 중장비 매매에 민감한 소비자의 특성을 감안해서다. 굴삭기 등의 고객은 빠르게 기존 장비를 매각하고 새 장비를 구입해야만 공백 없이 일감을 챙길 수 있다. AS도 마찬가지다. 신속·정확한 수리가 이뤄지지 않으면 고객의 재구매율은 현격히 떨어진다. 현대건설기계는 AS를 강화하기 위해 첨단 계측장비를 활용한 하이테크팀(Hi-Tech Team)도 전국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공 사장은 “고장난 굴삭기를 24시간 안에 고쳐서 고객에게 인도할 수 있을 정도로 정비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고 말했다.
◆내수·수출 투트랙
현대건설기계는 올해 매출 목표를 3조원으로 잡았다. 전년(2조2120억원)보다 35.6%가량 늘린 것이다. 올 하반기부터 해외 수주에 적극 나서 2023년에는 7조원의 매출을 달성해 세계 5위권에 든다는 청사진을 마련했다.
실제 분사 이후 첫 해외 수주부터 대박을 터뜨렸다. 러시아에서 총 2000만달러 규모의 초대형 굴삭기 36대를 수주한 것이다. 이번에 수주한 장비는 80t급과 120t급 초대형 굴삭기로, 러시아 전역 광산 개발지역에 투입된다. 앞서 1분기 글로벌 매출도 중국, 인도 등 신흥시장 맞춤형 신제품 판매 전략과 글로벌 시황 회복 등에 힘입어 전년 동기 대비 30% 증가했다. 공 사장은 “앞서 이탈리아 피아트그룹의 건설기계 자회사인 CNHI에 미니굴삭기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납품하기로 했다”며 “해외 업체와의 제휴를 통해 매출을 늘리겠다”고 강조했다.
◆다른 분사 기업도 ‘선전’
현대중공업에서 같은 시기에 떨어져나와 각자도생에 나선 현대로보틱스,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 등도 모두 순항하고 있다. 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는 현대로보틱스는 자회사인 현대오일뱅크의 실적 악화로 다소 수치가 하락할 전망이지만 성장성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산업용로봇 분야가 각광받고 있어서다. 회사 영업이익률 역시 2014년 -1.2%에서 2015년 0.5%, 작년 5.4%로 점차 높아지고 있다.
현대일렉트릭도 이달 들어 세계 최대 규모의 산업용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수주했다. 현대일렉트릭이 수주한 ESS는 산업시설용으로 세계 최대 용량인 50㎿h(메가와트시)로, 1만5000여 명이 하루 동안 사용하는 전력을 한 번에 저장할 수 있는 규모다. 권오갑 현대중공업 부회장은 “현대중공업이라는 거대한 그늘을 벗어난 것이 오히려 실적 개선의 디딤돌이 되고 있다”며 “수주 실적이 개선되는 현대중공업까지 정상 궤도에 오를 경우 지난 4월의 사업 분할이 ‘신의 한수’였다는 게 입증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원/안대규 기자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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