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에너지 정책은 정치중립적이어야

입력 2017-07-10 18:46
수정 2017-07-11 07:28
"싸고 깨끗하며 안전한 에너지 없어
섣부른 탈원전·탈석탄은 만용
과학과 현실제약 기반한 정책 펴야"

손양훈 < 인천대 교수·경제학 >


새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에너지 정책방향은 매우 파격적이다. 기존의 정책을 일거에 바꾸겠다고 한다. 원전과 석탄발전을 대폭 줄이고 천연가스와 신재생에너지로 이를 대신하려 하고 있다. 더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를 쓰자는 것은 시대의 요구이며 미래의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소득이 늘어날수록 더 나은 환경을 찾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지불해야 하는지는 알고 해야 한다. 벤츠 자동차가 멋져 보이지만 가격도 묻지 않고 내 주머니 사정도 살피지 않고 덜컥 계약부터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라고 알려져 있는 천연가스와 신재생에너지는 싸거나 편리하지는 않다. 싸고 언제라도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편리한 수단인 석탄과 원전이 깨끗하거나 안전하지 않듯이 말이다. 세상사가 늘 그러하다. 물도 좋고 정자도 좋은 곳은 없는 법이다.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의 시대를 열겠다는 약속에 환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을 국민의 동의라고 믿는 아마추어 정부가 아니기를 바란다. 뒷감당을 외면하거나 턱없이 축소해 버리는 것은 만용이다. 어쩌면 깨끗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은 사실 국민의 허락을 구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국민으로부터 얻어야 하는 것은 그 고통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다. 지금까지와 같이 싸고 편리한 전기를 더 이상 쓸 수 없어도 좋다는 고통의 동의 말이다. 요금은 턱없이 오르고 걸핏하면 정전도 생길 수 있다. 고도 산업국가인 대한민국의 에너지 안보를 뒤흔드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일본이나 독일을 부러워하지만 이들 국가의 전기요금은 대략 우리의 두 배 이상이다. 국민이 이 점에 동의해야 하는 것이다. 추워도 내복 입고 지내고 자동차를 타지 않고, 산업체는 고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더워서 아기가 땀띠 범벅이 되더라도 부채질하면서 여름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을 뒤로 감추고 좋은 점만 부각하면 이는 기만일 뿐이다.

새 정부는 힘이 아주 세다. 에너지 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들과 공기업은 벌써 바람이 불기도 전에 누울 자세가 돼 있다고 한다. 원전과 석탄을 대폭 줄이는 정책을 만들어 올 것이다. 그래서 일거에 방향을 바꾸는 그 좋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해 낼 것이다. 격랑 속에서 거대한 선박의 조타기를 마구 돌려 반대방향으로 선회하는 무리수를 감행해 내고야 말 것이다.

에너지 패러다임의 변화는 최소한 10년이 걸리는 일이다. 한 정부의 임기보다 훨씬 길다. 이번 정부 5년 동안에는 지난 정부가 투자해 놓은 전원설비 덕분에 당장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신고리 5, 6호기 공사 중단을 논하고 있지만 이조차도 건설완료 시점은 5년 뒤다. 이 정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년 뒤에는 다르다. 에너지 가격을 급격하게 올려야 하거나 공기업의 부채가 턱없이 누적돼 갈 것이다. 당장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5년이나 10년쯤 후에 걷잡을 수 없는 에너지 안보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그때는 금방 바꿀 수도 없다. 에너지 정책의 변화는 또 다른 10년에 걸쳐 진행되기 때문이다. 에너지 정책이 정치 중립적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에너지를 전문성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의 마당에서 함부로 다뤄서 생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에너지 믹스’에 과감하게 손을 대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하기 전에 전기요금이라도 한번 올려보라. 에너지세를 부과하고 환경비용을 내재화하는 과감한 정책을 시행하라. 육상이나 해상에 풍력발전기를 설치할 때마다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는 주민들의 동의를 받아와 보라. 그러면 그때 가서 에너지 믹스의 과감한 전환을 얘기할 수 있다. 그게 옳은 순서다.

책상에 앉아서 꿈꾸는 아름다운 미래가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과학적 사실과 현실적 제약을 기반으로 에너지 정책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책임 있는 정부다.

손양훈 < 인천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