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역풍'…흔들리는 미래 먹거리 중성자 연구

입력 2017-07-10 17:56
수정 2017-07-11 06:04
'세계 중성자 과학올림픽' ICNS 대전서 개막

원자로서 생산되는 중성자…세포 손상 없이 구조 분석
알츠하이머 등 연구 핵심…자동차·항공 결함 확인에도 활용

3년간 멈춘 연구 원전 '하나로'
재가동 문제 지역민과 충돌…현대차, 연료전지 연구 차질


[ 박근태 기자 ]
미국 에너지부 산하 오크리지국립연구소는 지난 5월 세계 최초로 흙에서 흔히 발견되는 미생물인 고초균의 세포막을 살아 있는 상태에서 관찰했다. 연구소 측은 고선속 동위원소 원자로(HFIR)라는 연구용 원자로와 파쇄중성자원(SNS)이란 가속기에서 원자핵을 분열시켜 생성한 냉중성자로 살아 있는 세포막 구조를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 살아 있는 세포의 구조를 나노미터 수준까지 본 것은 처음이다.

미국 중성자 연구의 권위자이자 비영리연구기관 배탤사의 톰 메이슨 부사장(사진)은 10일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열린 세계중성자산란학술대회(ICNS)에서 기자와 만나 “중성자 연구는 세포를 살아 있는 상태에서 가장 정밀하게 관찰하고 수소 원자 위치까지 파악할 수 있는 등 과학에서 새 역사를 쓰고 있다”며 “듀폰 등 세계적 화학소재 기업과 제약사에서도 신소재와 신약 개발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1982년 일본 하코네에서 처음 열린 ICNS는 4년마다 전 세계 중성자 연구자와 활용 기업 및 기관 관계자가 모두 모이는 ‘중성자 과학 올림픽’으로 불린다.

연구용 원자로나 가속기에서 생성된 중성자는 물체 크기를 재는 일종의 자 역할을 한다. 냉중성자는 약 1∼100나노미터(1㎚=10억분의 1m) 크기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다. 무엇보다 살아 있는 나노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중성자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이런 특성은 신약 개발과 신소재 개발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미국 시카고대 연구팀은 냉중성자를 이용해 환자 뇌에서 알츠하이머 단백질(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의 구조를 최초로 밝히는 데 성공했다. 국내에서도 중성자 연구가 큰 활약을 펼친 적이 있다. 2005년 제4대 국새 제작자가 국새에 들어갈 금 일부를 빼돌린 사건에서 국새 내부에 틈이 있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미국을 비롯해 각국은 쓰임새가 많은 중성자 연구를 확대하기 위해 대학과 기업, 공공기관이 밀접하게 협력하고 있다. 해마다 HFIR과 SNS를 이용하는 대학과 기업 연구진은 600~700개 팀에 이른다.

국내에도 HFIR에 필적할 만한 시설이 있다. 대전 유성 원자력연구원에 있는 연구용원자로 하나로다. 이 연구용 원자로에는 2010년 냉중성자 생산 시설이 설치됐다. 하지만 하나로는 3년 가까이 멈춰 있다. 2014년 7월 고장으로 멈춘 하나로는 수리를 마친 뒤에도 내진 보완 조치 공사가 2년에 걸쳐 진행됐다. 지난 5월 재가동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시민단체와 인근 주민들은 하나로와 사용후핵연료 보관 방식의 안전성을 먼저 확보해야 한다며 재가동을 반대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신규 원전건설 중단 등 ‘탈핵정책’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하나로를 바라보는 시선도 더 날카롭다.

일부 연구는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하나로에서 생산한 중성자로 수소자동차용 연료전지 결함을 찾는 연구를 해왔다. 하지만 3년 넘게 중성자 생산이 중단되면서 당초 일정보다 연구가 늦어지고 있다. 메이슨 부사장은 “하나로는 동위원소 생산, 비파괴 검사 등 다양한 목적에 활용될 수 있는 보기 드문 연구용원자로”라며 “연구용원자로가 과학 발전과 기업 이익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지역사회에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전=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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