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구의 교육라운지] '블라인드 채용'에 대처하는 명문대생의 자세

입력 2017-07-10 11:42
수정 2017-07-10 18:29
공공기관 채용시 지원자 출신학교를 비롯한 각종 스펙을 기재하지 못하게 한 ‘블라인드 채용’이 대학가에서 이슈가 됐다. 학벌 등 여러 조건을 “가리고” 공정하게 평가하자는 게 원래 취지다. 그러나 명문대 학생들은 ‘역차별’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학교명이 들어간 거주지나 이메일 주소, 동아리명 등을 입사 지원서에 써내 눈에 띄게끔 하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이해한다. “학벌도 실력이며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항변이 틀렸다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학벌과 실력이 어느 정도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소위 ‘좋은 학벌’은 초·중·고교 12년간 비교적 성실하게 공부하고 학교생활 했다는 이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학벌이 해당 일자리가 필요로 하는 능력에 부합한 지표인가 하는 질문과는 별개로 말이다.

학벌이 ‘차별금지’의 목록에 포함돼야 하는지 역시 세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학벌은 장애, 성적 정체성 등의 필수적 차별금지 대상과는 다른 성격을 갖고 있어서다. 나아가 학벌과 무관한 다양한 능력을 요구하는 일자리의 부족이나 구조 자체의 문제를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대응은 아쉬운 면이 있다. 블라인드 채용의 ‘결과’로써 명문대 출신의 합격 비율이 유지됨을 입증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된다면 간판에 걸맞은 실력까지 갖췄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터이다.


명문대생들이 특히 역차별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블라인드 채용의 반대편에 ‘지역인재 채용할당제’가 있기 때문이다. 블라인드 채용의 지향점은 공정경쟁인데 지역인재 채용할당제는 예외로,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불만이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은 공공기관 본사 이전 지역 소재 대학 출신을 신규채용 인원의 30% 이상 선발하도록 했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하다. 명문대 나왔다고 해서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어려운 시대를 사는 그들에게 “대승적으로 이해하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지역인재 채용할당제는 필요하다. 언론, 학교, 정부 등 사회의 곳곳에서 서울 출신, 명문대 출신이 과잉대표 되고 있다. 반면 지방 출신, 지방대·전문대·고졸 출신은 그 비중에 비해 목소리가 너무 작다. 자유경쟁의 결과로만 여기기에는 시야가 좁아지고 획일화될 우려가 크다.

예컨대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가 학창시절 모범생으로만 채워지는 게 옳은 방향일까. 경험칙상 그다지 ‘놀아본’ 경험 없이 자란 교사가 자신의 상식에 어긋나는 ‘노는 학생’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명선수가 반드시 명감독이 되지 않는 것처럼. 임용시험이라는 공정경쟁·자유경쟁의 결과가, 도리어 교육적으로 필요한 다양성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학벌의 진짜 힘은 네트워크에 있다. 꼭 부정적 의미의 ‘인맥’이 아니라 해도 삶의 여기저기서 힘을 발휘한다. 명문대 출신과 비명문대 출신이 학벌로 인해 얻는 경험의 폭과 깊이의 차이도 작지 않다. 이것만으로도 학벌은 보이지 않는, 하지만 상당한 인센티브를 가져다준다.

그렇다면 ‘보이는’ 영역에 제한을 두는 방식으로 최소한의 균형점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우병우 사태가 왜 빚어졌는지 되새겨보면 답은 나온다. 근본 문제는 명문대 출신이 부와 명예와 권력을 독점하는 구조였다. 승자독식 문화와 그것이 정당화되는 분위기가 굳어지면 비주류는 아예 설 곳을 잃는다.

엄밀히 따지면 스크린 쿼터제도 공정경쟁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시행됐다. 일정 수준의 기회를 보장한 덕에 한국 영화는 체력을 키울 수 있었다. 지역인재 채용할당제도 그런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세부 절차상 문제점이나 예외적 케이스가 왜 없겠나. 시행 과정에서 그들의 목소리도 가급적 반영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제도화 노력이 ‘가야 할 길’인 것은 맞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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