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실리콘밸리 에스토니아를 가다
에스토니아는 어떤 나라
[ 이동훈 기자 ]
에스토니아는 발트해 연안에 자리잡은 작은 국가다. 인구 수(130만 명)만 따지면 서울 강남 3구(167만 명)보다도 적다. 면적은 4만5228㎢로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리투아니아 라트비아와 함께 ‘발트 3국’에 포함되지만 실제로는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와 지리적, 문화적으로 더 가깝다.
에스토니아는 국가 모습을 갖춘 직후인 13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프로이센과 스웨덴, 러시아 등의 지배를 받았다. 1940년 옛소련의 16번째 공화국으로 복속됐다가 1991년 독립했다.
독립 당시 에스토니아는 ‘빈털터리’였다. 1993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500달러에 불과했다. 통신망 등 이렇다 할 인프라도 없었다. 빌자르 루비 경제개발부 차관은 “살아남으려면 하루 빨리 계획경제를 버리고 시장경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에스토니아 정부가 가장 공을 들인 것은 인프라다. 최신 기술로 인프라를 깔아 뒤처진 국가 경쟁력을 단번에 만회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아날로그 전화기를 공짜로 주겠다”는 핀란드의 제안도 거부했다. 구리선을 매립해 유선통신망을 갖추는 대신 무선전화망과 인터넷 기지국을 설치할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은행 점포를 여는 대신 인터넷뱅킹을 보급하는 데 주력했다.
에이키 네스터 국회의장은 “지난 20여 년 동안 정권이 수차례 바뀌어도 디지털 정책의 근간은 계속 유지됐다”며 “모든 정치인이 에스토니아가 ‘작지만 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모델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수한 인력과 교육시스템도 ‘에스토니아의 기적’을 만드는 데 한몫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시행한 코딩(컴퓨터 프로그래밍) 교육은 오늘날 에스토니아가 ‘스타트업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 덕분에 스타트업이 주로 창업하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는 이제 에스토니아 GDP의 7%를 담당하는 핵심 산업으로 성장했다. 전체 고용의 9.3%, 수출의 14.2%를 책임지고 있다. 에스토니아인들의 삶도 한결 풍성해졌다. 지난해 1인당 GDP는 1만7891달러로 독립 25년 만에 7배 넘게 불었다.
탈린·타르투=이동훈 기자 lee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