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북핵과 한·일 셔틀외교

입력 2017-07-09 17:34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셔틀(shuttle)’은 두 지역을 정기적으로 왕복하는 항공기나 기차, 버스를 뜻한다. 1903년 라이트 형제가 동력 비행에 성공한 뒤 상업적으로 항공 셔틀 운항을 처음 시작한 나라는 독일이다. 1910년 6월 프랑크푸르트와 인근 도시를 오가는 셔틀 노선을 만들었다. 1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항공산업이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셔틀 운항은 미국, 영국 등으로 확대됐다. 1910년대 중후반 미국 국내 도시를 연결하는 노선들이 잇따라 생겼다. 영국은 1919년 8월 런던~프랑스 파리 노선을 개설, 처음으로 국제 항공 셔틀 운항을 시작했다. 현재 셔틀 운항은 보편화됐다.

항공기 운항과 관련한 셔틀을 외교적으로 처음 쓴 사람은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다. 1970년대 초반 중동전쟁 당시 키신저는 평화협상을 위한 중재자 역할을 했다. 키신저는 자신의 역할을 ‘셔틀외교’라고 이름 지었다. 양쪽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을 때 제3자가 양쪽을 오가며 대화를 성사시키는 방식이다.

‘한·일 셔틀외교’가 등장한 것은 2004년이다. 두 나라 정상이 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상대국을 오가며 실무 형식으로 자주 만나 현안을 논의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3자 중재를 뜻하는 키신저의 셔틀외교와는 다소 달랐다. 그해 7월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제주에서 ‘노타이’ 차림으로 회담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두 나라가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5개월 뒤엔 노 대통령이 일본 가고시마를 방문했다.

그러나 2005년 10월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재개하면서 셔틀외교는 멈췄다. 2008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가 셔틀외교를 복원시켰다. 양국 정상은 몇 차례 두 나라를 상호 방문해 정상회담을 했다. 이후 2011년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이듬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신사 참배로 다시 셔틀외교는 중단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지난 7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독일 함부르크에서 만나 셔틀외교 재개에 합의했다. 두 정상은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다만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선 여전히 평행선을 달렸으며, 추후 셔틀외교 등을 통해 논의해 나가기로 했다.

문 대통령은 최근 남북 문제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다. 운전석 차지를 강조하면서 북한 문제를 풀기 위한 조정력을 발휘해야 하는 숙제도 동시에 안았다. 이 숙제 해결에 일본과 관계 개선은 필수다. 그러자면 언제까지 과거에만 매달려 있을 수는 없다. 복원된 셔틀외교로 양국이 진짜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