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독일 회담서 각별한 우정 과시
중국은 에어버스 항공기 사주고 독일은 '일대일로' 건설사업 참여
대화 강조한 북핵 대응 공조할 수도
푸틴 만나기 전 잽 날린 트럼프 "러의 행동이 주변국 안보 해쳐"
[ 베이징=김동윤 기자 ]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7~8일(현지시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친밀감을 과시했다. 지난 5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양국 정상회담 자리에서다.
시 주석은 중국이 상대국에 대한 호의를 표시할 때 동원하는 판다를 이번 정상외교에 활용했다. 메르켈 총리는 시 주석 부부를 위한 사적인 환영만찬에 평소 외교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남편 요아힘 자우어 교수를 참석시켰다.
양국 정상의 이런 행보는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종의 ‘반(反)트럼프 전선’이다.
시진핑, 항공기 140대 구매키로
차이나데일리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와 시 주석은 이날 정상회담과 오찬을 하고 투자·무역·항공·판다 보호 등과 관련한 협정을 체결했다. 독일은 시 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중국이 앙골라에서 추진 중인 수력발전소 건설 사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중국은 유럽 항공사 에어버스가 제작한 항공기 140대를 228억달러에 구매하기로 했다.
인민일보 등 중국 언론들은 시 주석과 메르켈 총리가 북한 핵 문제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시 주석이 중국의 ‘쌍궤병행(雙軌竝行)’과 ‘쌍중단(雙中斷)’ 제안에 대해 독일의 지지를 요청했을 가능성이 높다.
쌍중단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활동과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을 동시에 중단하는 것이고, 쌍궤병행은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체제 구축을 병행 추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두 정상은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만족감을 나타냈다. 시 주석은 “메르켈 총리와의 대화는 생산적이었다”며 “정치적 신뢰 제고, 실용적인 협력, 국제 문제에 대한 양자협력 등에서 많은 새로운 합의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과 중국의 경제 교류는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며 “상품 교역뿐 아니라 기술 교류 분야에서도 상당한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판다 활용해 친밀감 높여
중·독 정상회담은 7~8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예정된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열렸다. 시 주석은 회담 직전 독일에 중국의 상징인 판다 두 마리를 선물했다. 판다는 중국 정부가 상대국에 높은 수준의 호감을 표시할 때 활용해온 동물이다.
지난달엔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독일을 방문했다. 중국 서열 1, 2위가 한 달의 시차를 두고 한 나라를 방문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그만큼 중국이 독일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메르켈 총리가 4일 사적인 환영만찬에 남편 자우어 교수를 참석하도록 한 일은 가장 높은 수준의 친밀감을 표시한 것이란 평가다.
두 정상 간 연대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불편한 관계를 의식한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정상회담 이후 북핵 문제에서 공조하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북핵 문제 해결 노력에 실망했다”며 시 주석을 강하게 압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대응책을 놓고 시 주석을 몰아붙일 가능성이 크다.
메르켈 총리는 5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때 통상 문제를 놓고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했다.
트럼프, 러시아와 대립각 세워
트럼프 대통령은 6일 G20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폴란드를 방문한 자리에서 러시아와 대립각을 세웠다. 그는 바르샤바 광장에서 한 대중연설에서 “러시아가 주변국이 안보 위협을 느끼게끔 행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기 하루 전 날을 세운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상호방위 의무를 준수할 것임을 다시 한번 약속했다. 그는 “미국은 그간 상호방위의 약속을 굳게 지킨다는 것을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해왔다”고 강조했다. 상호방위 의무는 NATO 협약 5항을 가리키는 것으로 한 회원국이 공격을 받으면 다른 모든 동맹국이 달려와 지켜주도록 돼 있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