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구글X 최고기술자의 행복론

입력 2017-07-03 17:43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예나 지금이나 많은 철학자들이 행복에 대해 탐구하고 사색했다. 사상가, 철학도만이 아니었다. 종교인 문인 예술가들도 그렇고, 무수한 장삼이사들도 무엇이 행복이며 어떤 상태가 행복인가를 고민했다. 짧은 단상이 아니라 체계화된 저술로 ‘행복론’도 허다하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톨스토이), “적당한 외모, 한 사람은 이기고 둘에겐 질 정도의 체력, 먹고 입고 살기에는 약간 부족한 듯한 재산, 내 생각보다 절반 정도만 인정받는 명예와 말솜씨가 행복 조건”(플라톤), “부모구존, 하늘을 우러러 땅을 굽어보며 부끄럼 없이 사는 것, 천하 영재를 모아 가르치는 것”(맹자), “좋은 글 읽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기, 좋은 벗과 술 한잔이 군자삼락”(추사), “일거리가 끊이지 않는 파리 경찰서장이 가장 행복한 사람”(알랭), “객관적인 삶의 방식에 자유의 정신과 사랑, 다양한 관심과 열의를 가진 이가 행복한 사람”(러셀), “필요한 것 이상의 부는 우리의 행복감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오히려 많은 재산 유지에 쓸데없는 걱정으로 행복감이 방해받는다”(쇼펜하우어).

인간 존재와 행복의 결부는 철학이나 종교, 예술의 전유(專有)영역도 아니다. 유행처럼 복지국가론이 나돈 이래 정치와 행정도 직접 행복을 나눠주겠다며 포퓰리즘 경쟁을 벌인 경우가 허다했다. ‘행복주택’ ‘행복센터’(행정복지센터) ‘행복한 보금자리’ 등 지방자치단체까지 가세한 한국의 정치는 뒤늦게 ‘관급 행복’ 제공에 발동이 걸린 것 같다. 국가나 정부가 자유시민 개개인에게 행복을 준다? ‘인민 낙원’을 건설하겠다는 공산국가에서나 나오는 구호다.

행복의 조건과 정의가 사람마다 제각각이듯 그런 행복으로의 도달 또한 궁극적으로 개인의 평생 과제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팍팍한 생활 속에 ‘전문가’에게 배우고 싶고, 앞선 이들의 색다른 경험이나 깊은 사유에서 답을 찾고 싶은 게 보통사람들이다. 굳이 사상가, 대문호, 석학이 아니어도 좋다. 때로는 내 눈높이에 맞고, 답답한 내 현실에 꼭 맞는 해법이 더 좋다.

고도화된 IT시대, 4차 산업혁명 진입기의 행복은 어떤 것일까. 구글의 미래 프로젝트 구글X 신규사업개발총책임자(CBO)라면 색다른 행복관을 제시할까. 구글 CBO 모 가댓이 한경 초청으로 이번주 방한한다. 의료사고로 다 큰 아들을 잃은 직후에 쓴 행복을 풀다(모 가댓, 한경BP) 한국어판 출간에 맞췄다. 올여름, 구글 최고 브레인의 행복론은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21세기 행복은 무엇인가. 어떻게 도달할 것인가.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