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삼성 지휘봉을 넘겨받은 이건희
세계 컴퓨터 시장 폭발···반도체 1위 '우뚝'
삼성전자는 세계적 초일류 기업이 됐다. 인터브랜드 발표에 따르면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459억달러로 세계 7위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보다는 낮지만 GE와 BMW, 아마존보다 높다. 한국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이 탄생한것이다.
‘위기’ 속 찾아온 ‘기회’
삼성을 이렇게 만든 주역은 이건희 회장이다. 이병철은 삼성을 한국 최고의 기업으로 만들었고 그의 아들인 이건희는 세계 최고 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건희가 삼성그룹의 지휘봉을 넘겨받은 것은 1987년. 당시 회사는 매우 어려운 상태였다. 문제는 반도체였다. 1983년 이후 막대한 투자가 계속됐다. 그 덕분에 기술적으로 미국과 일본의 선발 주자들을 상당히 따라잡았지만 수입은 변변치 않았다. 적자의 연속이었다. 반도체 부문에서의 적자 때문에 회사가 망할 수도 있는 상태였다.
그러던 중 뜻밖에 행운이 찾아왔다. 1988년 반도체 대박이 터진 것이다. 개인용 컴퓨터 붐 덕분이었다. 컴퓨터는 원래 집채만큼 큰 물건이었는데 스티브 잡스 같은 미국의 천재들이 책상 위에 올려놓을 정도로 크기를 줄이는데 성공했다. 컴퓨터가 불티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부품인 반도체 역시 날게 돋친 듯 매출이 늘었다.
한 해 동안 반도체로 벌어들인 이익이 그동안의 적자를 다 메우고도 남을 정도였다. 삼성은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올라섰다.
과감한 사업 구조조정
그다음 사업은 자동차였다, 아버지 때부터 시도했지만 정부가 허가를 안 내줘서 숙원사업이 됐다. 김영삼 정부 때 어렵사리 허가를 받아 자동차사업에 착수했다. 닛산과 합작으로 출시한 SM5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도 좋았다. 하지만 외환위기 와중에서 자금난이 닥쳤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건희의 결단은 자동차사업 포기였다. 1999년 법정관리에 넘겼다.
‘IMF 외환위기’로 인한 자금난은 거의 모든 계열사를 조여왔다. 사업들을 버리고 팔아야 했다. 65개의 계열사를 45개로 줄이고 236개의 사업을 포기했다. 그룹의 주력이 된 삼성전자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 1997년 일본 법인에 나가 있던 윤종용을 불러들여서 삼성전자 개혁의 전권을 부여했다. 윤종용은 삼성전자 창립 때부터 있었던 삼성맨이었다. VCR 같은 것들을 맨땅에서 만들어낸 공신이기도 했다. 전권을 부여받은 윤종용은 삼성전자를 새로 만들어 갔다. 한계사업은 정리하고 수익성 있는 사업들로 구성했다. 원가를 낮추기 위해 전 세계 삼성전자 공장들과 사업소들의 판매량 재고량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전 직원이 공유하게 했다. 56일 걸리던 재고회전주기가 34일로 줄었다. 생산계획 수립 기간은 3주에서 1주로 줄었다. 세계에서 가장 날쌘 전자회사가 된 것이다. 그 바탕 위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아날로그 기술 대신 디지털 기술에 집중했다. 세계 최정상 기업들도 이제 시작 단계에 있는 기술에 전력을 기울인 것이다. 그리고 성공했다. 2005년 드디어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가 소니를 넘어섰다. 초일류기업으로 올라선 것이다.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다
이건희는 직접 나서는 스타일이 아니다. 윤종용에게 그랬던 것처럼 본인은 큰 방향만 정하고 대부분 일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겼다. 그러다 보니 삼성에서는 많은 인재가 나왔다. 윤종용뿐 아니라 황창규, 진대제, 권오현 등 많은 인재가 배출됐다. 그들을 다른 기업들이 스카우트하는 바람에 삼성스타일 기업들이 많이 생겼다.
이건희 회장은 다른 분야의 변화에도 큰 영향을 줬는데 그중의 하나가 장례문화이다. 그 이전까지 장례식을 치르다 보면 바가지를 쓰기 십상이었다. 장례는 누구나 처음 당하는 일이라 우왕좌왕하기 마련이었고 장례업자들이 그 약점을 악용하곤 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료원의 장례식장을 정가제로 운영하게 했다. 누구나 안심하고 맡길 수 있게 상담원도 따로 뒀다. 상주
가 편하게 묵을 수 있도록 시설도 장례식장 구조도 바꿨다. 삼성의료원 장례식장에 대한 평판이 좋다 보니까 다른 병원들도 장례식장을 그렇게 바꿔가기 시작했다. 이제 삼성은 또다시 위기에 처했다. 이건희 회장은 병상에 누워있고 이재용 부회장이 그 자리를 이었다. 또 한 번의 도약을 기대한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kim.chungh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