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앞세운 위안부 문제 건드리기보다
청년실업 해소 위해 일본 이용하는 게 현명
국중호 < 일본 요코하마시립대 교수·경제학 >
한국 대통령은 권불십년(權不十年)은커녕 권불오년이니 어찌어찌하다 보면 5년은 금방 간다. 한·일 관계 전략이 턱없이 부족한 한국에서 일본전문가들의 힘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채 감정논리와 민주논리에 묻힐까 걱정이다. 이 두 논리가 통하지 않는 일본인지라 그 두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국익에 도움되지 않는다. 소모적인 공(空)회전으로 세월만 흐를 뿐이다. 경제를 살리고 청년을 더 풍부한 경험의 바다로 이끌고자 한다면 감정논리, 민주논리와는 다른 기준의 일본 다루기가 요구된다. 문재인 정부의 대(對)일 전략 판짜기로서 ‘개별 안건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경제문화는 협력하자’는 취지의 실리 노선을 제언한다.
감정을 앞세워 소녀상을 일본 대사관이나 영사관 앞에 세우고 항의한다고 해서 일본 정부가 고개 숙이고 “위안부 문제를 재협상하겠다”고 나올 리 만무하다. 일본 정부로선 박근혜 정부 때 ‘최종 그리고 불가역적(不可逆的)’으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불가역적’이라 함은 ‘다시 원래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는’이란 뜻이니, 일본으로선 “이미 다 해결된 것을 왜 또 꺼내 드느냐”며 외면할 뿐이다. 행여 일본 국민이 인권이나 인간 존엄성을 내세워 자국 정부에 항의하며 나오길 바란다면 안이한 생각이다. 대개의 일본인은 인권이니 존엄성이니 하는 추상개념을 심각하게 고민하지도 않을 뿐더러 정치외교는 정부에 맡기고 침묵하는 쪽으로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금방 해결하지도 못할 사안으로 한·일 관계가 발목 잡혀 있으면서 급한 불도 끄지 못하고 있는 작금의 한국이다. ‘위안부 문제는 전문가 그룹이 논의하도록 하자’는 쪽으로 유도하고 심각한 청년실업 해소 등을 위해 일본을 이용하는 것이 현명한 전략이다. 한국은 청년들이 직장 잡기가 어려워 안타까운 현실인 반면 일본은 기업이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안달이다. 한국 청년들의 일본 중견기업 취업은 차분히 일을 익혀가며 일본을 알아갈 기회도 된다. 일본 기업으로서도 나쁠 게 없다. 대외지향성이 부족한 일본 직장인에게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한·일관계에서 획기적인 전기(轉機)는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 간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위한 공동선언’이다. 이 선언은 한류문화 붐의 도화선이 됐고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개최를 거치며 한류는 무르익어갔다. 잘나가던 한·일관계는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죄 발언’으로 냉랭해졌다. 일본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반일(反日)’ 이미지로 비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다는 문 대통령의 경력을 들어 노무현 정부 때와 비슷할 것이라는 추측도 하고 있다. 한데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를 이어받았다. 이를 외교적 무기로 역이용해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정신으로 나아가자’는 전략이 유효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1953년생,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1954년생으로 나이는 비슷해도 형성돼온 사고는 대조적이다. 문 대통령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경험하며 인권을 소중히 해온 서민 출신인 반면 아베 총리는 자민당 창당(1955년) 이후 이어져온 정치권좌 집안 출신이다. 둘은 유유상종(類類相從)할 수 없다. 하여 문 대통령이 아베 총리를 향해 한국적 민주논리를 강조해도 겉돌기 십상이다. 두 사람 간 생각의 코드와 정서 차이를 인정하고, 외교 및 정치의 상징으로 서로 악수하며 사진 찍을 수 있는 사이면 합격점이다. 그 자체가 큰 진전이다.
국중호 < 일본 요코하마시립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