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1만원, 근로시간 단축 등 경제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정책들
소득주도 성장론도 앞뒤 바뀐 것
경제를 살리려면 규제철폐, 자유시장 형성밖에 없어
안보도 최악을 가정하고 대비해야
김영용 <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
개념은 사물을 인식하는 정신적 도구다. 개념이 잘못되면 사물의 속성과 이치를 잘못 파악하게 되고 그런 잘못에 입각한 정책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을 우려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개념이 잘못됐다는 판단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민주 항쟁 30주년 기념사에서 ‘경제 민주주의’를 화두로 제시했다. 민주주의라고 하면 흔히 대의정치 하에서 1인 1표의 정치적 의사결정 방식을 뜻한다. 사표(死票)는 필연적이다. 반면에 경제 민주주의에서는 시장에서 1원 1표에 입각한 의사결정이 생산, 산업구조, 임금, 고용, 이자율 등의 경제 변수에 똑같이 영향을 미친다. 사표가 없다. 따라서 경제 민주주의는 자유 시장경제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그런데 정부가 경제 민주주의의 실현 수단으로 제시한 것들은 모두 강제로, 경제 민주주의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들이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으로 인상, 법정 근로시간 단축,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이른바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과세 강화 등이 그런 것들이다. 정작 실업과 정규직·비정규직 문제의 커다란 원인인 강성 노조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소득주도성장론도 그렇다. 소득은 경제의 운행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소득 증가를 위해서는 소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의 왜곡된 측면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는 곧 정부의 강제를 없애고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보장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소득주도성장론의 논리는 일자리를 만들어 소득을 높이면 경제가 선순환(善循環)해 다시 소득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자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일자리는 사람들의 가치 체계와 그 변화를 가장 잘 알아내는 기업에 의해 창출되는 것이지, 정부가 일자리위원회나 추경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소득주도성장론은 원인과 결과를 뒤바꿔 놓은 것이다.
결국 경제에 관해 중요한 것은 한국과 같은 대규모 경제는 정부가 규제 철폐 등으로 자유 시장의 형성을 돕는 것을 제외하고는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묘안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는 것과 복잡한 정책을 시행할수록 경제를 어렵게 한다는 사실이다.
한편 어느 국가에나 가장 중요한 것이 안보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 자유, 재산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튼튼한 안보를 통해 평화를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존재 이유가 없다. 그런데 평화는 적어도 적과 대등한 국방력과 이를 위한 국방 외교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을 압도할 강한 안보 능력이 있을 때 대화와 포용 정책이 가능하다고 밝힌 문 대통령의 최근 지적은 타당하다.
국방력의 불균형 상태에서 평화를 사는 측은 흔히 선의(善意)로 평화가 얻어질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선의는 곧 조공(朝貢)이 되고 어느새 평화를 파는 측의 기득권이 되며 조공의 규모는 점점 더 커지게 된다. 북한에 선의를 베풀면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총(銃)을 녹일 수 있는 햇볕이 지구상에는 없다.
국가 안보는 최악을 가정하고 대비해야 한다. 국방재(國防財)는 적을 제압할 수 있거나 적어도 대등한 만큼 갖추되 쓰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그것은 국가의 존재 목적인 자기 보존을 위해 지급해야 하는 비용이다. 혼자 할 수 없으면 강대국, 특히 원거리 강대국과 연합하는 것이 상책이다. 자주 국방이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미국도 집단안보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국가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국민의 안위와 삶을 담보로 자신들의 이념이나 꿈의 실현을 실험하는 장소가 아니다. 인간의 짧은 이성에만 기댄 급격한 변화보다는 과거의 경험과 이성을 바탕으로 사안에 대해 차분하게 성찰해야 한다. 경험을 중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지성이 아니다. 튼튼한 경제와 안보를 위해 정부 당국자들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대한 개념을 바로 세워야 한다.
김영용 <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