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소금물 만드는 방법은?"… '깨는' 대기업 입사시험

입력 2017-06-25 11:00

"20g의 소금을 물 몇 g에 넣어야 5%의 소금물이 되겠는가?"
"다음 자료와 관련이 깊은 조선 시대 기관으로 옳은 것은?"
"아래 도형에서 나올 수 있는 삼각형의 개수는?"

취업준비생들이 대기업 입사 원서를 넣기도 전에 준비하는 인·적성평가 연습문제다. 서류전형 합격자들은 보통 인·적성평가를 거쳐 몇 차례의 면접을 통해 합격 여부가 결정된다. 삼성·현대차·SK·LG 등 대기업을 비롯해 많은 기업들이 인·적성평가를 시행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지원자의 성격 유형 등을 검사하는 인성시험과 직무 적성 등을 파악하는 적성평가로 나뉜다. 적성평가에는 대체로 언어 수리 추리 한자 한국사 등의 과목이 포함된다. 1995년 삼성이 SSAT(현재는 GSAT)를 시행한 후 대부분 대기업과 공기업 등이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기출문제는 이처럼 '깨는' 문제가 많았다. 소금물 농도 구하기, 속력 구하기 등 암기식 문제가 대표적이다. 중·고교 문제집을 다시 들춰봐야 풀 수 있다. 학창시절 배운 공식을 적용해 풀어야 하는데 내용 자체를 잊어버린 경우가 많다.

도식 추리 문제도 까다로운 편이다. 취준생 강혜원 씨(가명·25)는 "도형 전개도 문제 같은 경우 종이 조각을 찢어가면서 겨우 풀었다"고 귀띔했다.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하는 데다 직무와 연결되는 실용적 내용도 아니어서 '문제를 위한 문제'라는 비판도 나온다.

올해 상반기 진행된 삼성 신입사원 직무적성검사 GSAT의 경우 총 160문항을 3시간 내에 풀어야 한다. SK그룹 인·적성평가는 총 360문항에 달하지만 160분, LG그룹은 125문항에 140분이 주어진다. 쉬운 문제를 기계적으로 빨리 풀어야 그나마 난이도 있는 문항을 '생각'하면서 풀이할 시간이 확보된다.

국내 한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 씨(29)는 "적성검사를 위해 고교 때 봤던 '수학의 정석'을 다시 꺼내 봤다"고 전했다. 이과 출신의 경우 언어 추리·역사 문제, 문과 출신의 경우 수리 문제 등이 발목을 잡는다. 숭실대 화학공학과 송모 씨(가명·26)는 "언어 과목이 약해 인터넷 강의를 신청했다. 다시 수능을 보는 기분마저 든다"고 말했다.

도형 문제의 경우 도형과 도형 사이 ★, ◑, ♧ 등 특수기호를 넣고 이들 사이의 규칙을 알아내는 식으로 출제된다. 문제 유형이 분기마다 다르게 나오는 데다 영역별 과락 처리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인·적성시험에 대비한 강의를 듣는 학생도 적지 않다.

이는 취준생에게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강남 소재 한 학원의 대기업 인·적성 온라인 강의는 두 달 기준 10만~20만 원 선. 대부분 강의 하나에 10만 원을 넘나들었다.

게다가 인·적성 교재는 반년마다 최신판이 나온다. 기업별로 출제 경향이 달라 지원하려는 기업의 모의고사 문제집을 각각 사야 한다.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에 따르면 취준생 10명 중 6명꼴(59.8%)로 '인·적성평가 준비에 비용이 많이 들어 부담된다'고 답했다.

'탈스펙' 기조도 인·적성평가 앞에서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탈스펙으로 서류전형 문턱은 낮아졌지만 인·적성평가가 또 하나의 문턱으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일각에선 "수능 고득점자에게 유리한 시험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기업은 인·적성평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인사담당자는 "인재상에 부합하는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고, 또 다른 인사담당자는 "인·적성평가 고득점자가 실제로 일을 더 잘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창의적 인재상이나 현업에서 쓰임새가 있는 역량을 평가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목소리가 많다. 취준생 이세영 씨(가명·24)는 "도식적 추리, 수열 문제 등은 왜 내는지 모르겠다. 직무 역량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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