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조건 맞으면 연내 방북" vs 트럼프 "북한과 대화 더 멀어졌다"

입력 2017-06-21 17:46
시각차 여전한 한·미 대북정책

한국 '제재와 대화 병행'
북핵·미사일 동결 후 완전 비핵화
사드 환경평가, 배치 철회 아니다…한·미 연합훈련 축소 고려 안해

트럼프 "웜비어 사망 치욕스럽다"
북한 관광금지 카드 등 꺼낼 듯…"중재하겠다"는 EU역할 변수로


[ 조미현 / 워싱턴=박수진 기자 ]
문재인 대통령, 미국 언론과 잇단 인터뷰

문재인 대통령이 ‘핵·미사일 프로그램 동결→핵 완전폐기 달성’이라는 북핵 해결 2단계 로드맵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조건이 맞으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대화하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동시에 “북한은 비이성적인 정권”이라고 비판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반도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불거진 갈등설을 적극 진화하고 나선 것이다.

문 대통령은 21일 미국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핵이 갈수록 고도화되고 무기화되는 단계에 이르렀다”며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향해 점점 다가가고 있는 상황에서 핵과 미사일의 고도화를 멈추는 핵 동결이 우선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어 “1단계 동결 그리고 다음 단계로 완전한 핵 폐기라는 2단계 접근도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논의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같은 발언은 ‘북한의 핵 폐기 없이 대화는 없다’는 미국 정부를 설득할 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이 이날 “한국이 좀 더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한국이 보다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남북관계를 풀어나갈 때 남북관계도 훨씬 평화로웠고 미국과 북한관계도 훨씬 부담이 적었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재개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에 어느 정도 진전을 보인 후에나 가능한 문제라고 본다”며 “지금처럼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높여나가는 단계에서는 논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 문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도 조건이 갖춰진다면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며 “미국과 긴밀히 협의하고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 속에서 추진돼야 한다”고 했다. 북한에 17개월 동안 억류됐다가 석방된 미국 국민 오토 웜비어가 전날 사망한 것을 두고 미국 내 여론이 악화된 것을 의식한 듯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공조를 적극 부각했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해서는 번복할 뜻이 없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사드 배치 결정은 전 정부 결정이라고 해서 가볍게 보지 않겠다는 말을 여러 번 한 바 있다”며 “환경영향평가가 사드 배치 합의의 취소나 철회를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관련해 “한국과 미국은 조건이 갖춰지면 전작권을 환수한다는 데 합의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미국 CBS방송 ‘디스 모닝’과의 인터뷰에서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대통령 특보의 ‘한미연합 군사 훈련 축소’ 발언 논란과 관련,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며, 연합훈련 축소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문 특보에 대해선 “상근 특보가 아니며 학자로서 자유로운 활동을 하면서 필요할 때 제가 자문을 구하는 관계”라고 발언 의미를 축소했다.

미국 '최고의 압박과 관여'

한·미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양국이 대북 접근법을 놓고 심각한 견해차를 노출하고 있다. ‘제재와 대화 병행’ 전략(청와대)과 ‘최고의 압박과 관여’ 전략(백악관)이 맞부딪히는 형국이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에 이어 대북 접근법까지 곳곳에서 암초가 나타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의 북핵 노력 실패’ 발언은 문재인 대통령의 ‘연내 남북 정상회담 희망’(미 CBS방송 인터뷰) 발언이 있은 지 6시간 만에 나왔다. 발언 배경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우선 미국이 독자적 대북제재에 나서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중국 발언 직전 “북한에 의한 마지막 희생자(웜비어)를 애도하면서 미국은 다시 한번 북한의 잔혹성을 비난한다”고 했다.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오토(웜비어)에게 일어난 일은 완전히 치욕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전에 “중국이 북핵을 해결하지 않으면 미국이 나설 것”이라고 발언한 것과 웜비어 사망 후 북한을 강력 규탄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미국이 결국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독자 제재 방안으로는 미국인들의 북한 관광 금지와 중국을 겨냥한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 등이 거론되고 있다.

중국을 한 차례 더 압박하기 위한 카드라는 분석도 나온다. 워싱턴에서는 21일 양국 외교·국방 수장들이 회동하는 ‘미·중 외교안보대화’가 열린다. 미 정부 고위관계자는 행사 관련 브리핑에서 “핵심 이슈는 북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가용수단을 총동원하도록 압박하는 발언이라는 해석이다.

어떤 경우든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하는 한국 정부와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문 대통령은 20일 CBS방송과 21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제재와 압력만으로는 북핵을 풀 수 없으며 대화가 필요하다”며 “조건이 되면 남북대화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반면 백악관은 웜비어 사망 이후 북·미 대화 가능성에 선을 긋고 있다.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청와대(배치 연기 가능성)와 백악관(무조건적인 배치 수용)에 한랭전선이 형성된 가운데 웜비어 사망으로 인한 대북정책 이견까지 노출됐다. 오는 29~30일로 정상회담이 다가왔지만 가늠할 수 없는 안갯속으로 빠져들어간다는 평가가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0일 유럽연합(EU)이 북한 핵 프로그램 폐기를 위한 대북협상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방안을 한국, 중국과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EU 관리들이 지난달 브뤼셀을 방문한 한국의 조윤제 EU·독일특사에 이어 최근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와 만나 이 문제를 논의했다는 것이다.

당시 EU 지도부는 조 특사에게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적극적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EU 관리들은 또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를 브뤼셀에 초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미현 기자 /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mwise@hankyung.com